✍🏻 코로나가 동물원에 남긴 것
코로나19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동물원에서 잇따라 비극적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독일의 노이뮌스터 동물원은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동물 안락사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해요. 국내 민간 동물원도 마찬가지로 직원의 단축근무는 물론 동물들의 먹이 양도 줄였다고 합니다.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인 삼정더파크도 최근 폐업했다고 하죠. 바이러스가 몰고 온 냉혹한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단기간 수입이 없어 동물을 굶겨 죽여야 한다면, 애초에 사업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처럼 동물원 속 동물들은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가 데려온 생명이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동물이 사는 환경을 결정하는 이들은 동물원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동물원을 방문하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EFG ISSUE : 동물원과 수족관
🤔 왜 동물원이 문제일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갔었던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했습니다. 저만 해도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가서 동물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죠. 심지어 동물을 만지기도 했습니다. 그땐 왜 그게 잘못된 건지 몰랐습니다. 제가 본 것은 사람들의 즐거워 보이는 표정과 맛있는 아이스크림 등...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로 가득했죠. 생명이 가득 찬 듯한 분위기에 덩달아 신이 났던 거 같아요. 하지만 동물권을 공부하는 지금은 '오락'으로서 동물원을 소비하는 것에 회의를 느낍니다. 왜일까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는 철저히 인간의 시각에서 동물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즐겁다고 해서 동물들도 즐거운 것 아니라는 거죠. 동물원은 다양한 종의 동물들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고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하는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복지와 생명에 대한 존중은 얼마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동물원이 교육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하지만, 사실 우리는 굳이 동물원을 가지 않아도 동물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매년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큐를 보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죠. 다큐멘터리만큼 대자연의 경이를 쉽고 편하게 만나볼 수 있는 콘텐츠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동물원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국 '인간'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 아닐까요?
👀 우리는 언제부터 동물을 타자화 했을까?
아주 오래전에는 인류와 동물이 공생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머지않아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고 계급과 권력이 생기면서, 우리는 동물을 권력의 상징, 소장품으로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등장하는 많은 동물들과, 기원전 1000년 솔로몬 왕이 야생동물을 키웠다는 사실이 그 예죠.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동물을 타자화 해왔고, 재산이자 특권으로 취급해 온 거죠. 초기의 동물원은 그러한 인식에서 생겼습니다. 동물을 사육하고 전시하는 등, 오락의 대상으로 삼는 공간이었죠. 심지어 동물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동물원에서는 사람을 전시한 적도 있었습니다. (동물원의 역사를 자세히 다룬 뉴스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셔요💁)
👊 야, 너두 (동물원 CEO) 할 수 있어.(???)
장성익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동물은 법적으로 '재물', 즉 물건입니다. 2018년 9월 기준으로 공식 등록된 동물원이 84곳에 이르지만, ‘허가제’가 아니라 누구나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는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죠.
그 와중에 동물 사육의 구체적인 기준도 없고, 사육 환경을 제대로 점검하는 절차와 의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동물을 직접 만져도 되는 ‘체험형 동물원’도 있고요, 동물을 손님이 원하는 곳까지 데려가서 보여주는 ‘이동식 동물원’ 등과 같은 유사 동물원도 있습니다. 그뿐일까요? '라쿤 카페', '고양이 카페' 등 '야생동물 카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체험형 동물 카페는 보통 '식품접객업', '자유업'으로 분류되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현 동물원법상 '10종 또는 50 개체 미만'일 경우 동물원으로 등록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 복지 사각지대가 늘고 있는 셈입니다.😰
(+좋은 소식 추가! 2022년 11월 24일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야생생물법) 등 5개 환경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해요! 동물원, 수족관을 기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동물에게 고통 주는 행위가 금지되며 고래류 전시, 동물카페 등이 금지된다고 합니다.)
😨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동물은 '0원'?
이처럼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우리 일상에 흔하게 존재합니다. 펫 샵에서 강아지를 구매하는 것, 동물원의 동물들을 거래하는 것도 동물을 재산으로 보는 경우죠. 실제로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사자 4마리를 1320만 원에 매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이곳저곳에서 일본원숭이 2마리, 2016년에는 라쿤(미국 너구리) 3마리가 매물로 나오기도 했죠.
에버랜드에 사는 전체 동물의 가치는 대략 10억 원의 가치로 추측되고 있는데요. 여기서 놀라운 점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동물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어 자산 가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0원'입니다. 장부상 가치가 0원이라는 것은 재무제표에 자산이 적게 기록된다는 걸 뜻하는데요. 이를 악용하면 세금을 덜 낼 수도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는 '역 분식회계'라고 합니다.
😕 상품이 뭐가 어때서요?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차근차근 짚어 봅시다!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게 왜 문제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동물을 상품으로 간주할 경우, 공장식 축산처럼 동물을 잘못된 방법으로 관리한다는 겁니다(사실 관리한다는 단어도 좀 걸리긴 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코로나와 같이 전염병이나 재난이 닥쳤을 때, 동물은 물론 사람 또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1) '감금 사육'이라는 동물 학대
현재 동물복지 선진국에선 동물원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물론 허가제라고 해서 모든 곳이 바람직하게 운영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동물들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동물 복지를 늘리는 추세죠. 실제로 파리 동물원은 돌고래, 코끼리, 북극곰같이 활동 반경이 큰 동물은 아예 전시하지 않고 있고요, 샌프란시스코 동물원도 2004년 이후로 코끼리를 전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물 체험'도 우리나라의 체험 동물원과는 꽤 다른데요. 살아있는 거북이 대신 죽은 거북이의 등딱지를 만져보게 하고, 양 대신 소복하게 모아 놓은 양털을 만지게 하고 있어요. 심지어 생태 선진국으로 알려진 '코스타리카'는 2013년, 정부가 동물원을 폐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죠.
반면 한국의 현 동물원 관리법은 놀랍게도 시대를 역행한 수준인데요. '동물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만 적혀 있을 뿐 어떤 세부기준도 없기 때문이에요. 그로 인해 동물원이나 수족관 등, '전시를 위한 감금상태'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직, 간접적 학대 행위가 발생하고 있어요. 야생성을 표출할 수 없는 사육 환경에서 사는 경우, 그곳에서 관람객에게 장시간 노출되는 경우 모두 감금 사육으로 인한 간접적 학대입니다.
KBS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정식 동물원으로 인정받은 어느 동물 체험 시설에는 배설물을 보다 쉽게 처리하기 위해 철망 구멍 사이로 발이 빠져나가는 우리를 사용했다 해요. 어느 이동식 동물원에서는 작은 철장이나 이동장에 동물들을 넣고 겹겹이 쌓아 운송했고요. 어느 대형 아쿠아리움에서는 사자와 같이 생활 반경이 넓은 야생동물을 실내에서 전시하고 있었고요. 그로 인해 동물들은 쉴 새 없이 같은 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해요.
2) 전염병, 질병 확산의 원인
앞서 말한 동물원의 감금 사육은 비교육적이고 동물학대적인 요인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공중보건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요. 현 동물원 관리법 상 대부분의 야생동물 카페나 이동형 동물원은 동물들의 질병 상태 등을 공개할 의무가 없는데요. 이는 바꿔 말해 우리가 동물들의 건강상태는 물론, 질병 예방 시설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뱀을 둘러보거나 원숭이와 악수하고, 동물에게 입을 갖다 대는 등 어떤 식으로든 야생동물을 접촉하게 되면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아이와 같이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대부분 아이들이 동물과 접촉하지 않나요?🧐)
실제로 애니멀피플의 카드뉴스에 따르면, 체험형 실내 동물원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동물들이 폐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요. 그 밖에도 동물원법에 등록되지 않아, 질병 관련 보고 의무를 지지 않는 야생 동물 카페만 전국 50여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반대로 사람과의 접촉으로 외려 동물이 질병에 걸릴 수도 있어요. 실제로 미국 뉴욕 브롱스 동물원에서는 동물원 직원에 의해 호랑이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또 대부분의 국내 실내 동물원에서는 좁은 공간에 여러 종과 동물들을 같이 전시하는 '종 합사'를 하고 있는데요. 황주선 수의학 박사는 "엄격한 원칙 없이 종들을 합사하게 되면, 감금되어 있는 동물들 간 질병 전파를 촉진시킨다"라고 말했습니다.
🧑⚖️ 동물을 위한 법은 어디에
이처럼 동물원 속 동물들은 복지와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법률은 2016년 5월,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이라는 이름으로 드디어 통과됐죠. 그 전까지 동물원수족관법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나, 자연공원법에서 부분적으로만 규정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아요. '동물원 동물에 대한 복지와 학대방지'에 관한 규율은 턱없이 부족하죠. 동물원수족관법 제 1조를 보면, "야생생물 등의 보전/연구, 국민들에 대한 정보 제공, 생물다양성 보전"이 적혀있어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나 동물 복지 증진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죠. 처음 시행된 제정법인만큼, 많은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참고 : <동물법, 변호사가 알려드립니다>
🤔 앞으로의 동물원
우리나라는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원이 문을 연 지 100여년이 흘렀음에도, 동물원 내 동물복지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어요. 동물원 관리는 지난 2016년 『동물원・수족관법』제정으로 비로소 국가의 관리 범주 내로 들어오게 됐지만, ‘동물복지’ 관련 규정은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죠.
사실 노력하는 동물원도 많습니다. 종의 보존을 위해 인공수정 실험을 하기도 하고, 동물을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적응 훈련을 하기도 하죠. 직원들 간 매일 동물원의 이슈를 서로 공유하는 곳도 있습니다. 문제는 동물원 관리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로 인해 동물에 대한 애정과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동물원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는 거예요. 인간의 불완전한 정치와 문화는 사람은 물론 동물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 있죠.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온전히 살기를 원합니다. 나름의 존엄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죠. 하지만 우리는 동물을 인간과 다르게 보고 있어요. 심할 경우 그들이 누려야 할 자유와 삶의 기쁨을 부정하고 착취하죠. 동물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사람'도 차별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물원의 존재에 대한 찬반을 말하기보다는, 동물원이 가진 본질과 우리가 동물원 관계자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싶어요. 오늘날 동물원은 단순히 동물을 전시하고 관람하는 곳에 그치지 않아요.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보전 및 보호하고, 국민들이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체험하게 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죠.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동물을 사육하는 시설이기에, 동물 복지와 생명의 존엄을 고려해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동물원과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소규모 전시 시설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동물을 기르고 있어요. 그로 인해 동물복지, 안전 관리, 질병 관리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공중 보건과 동물 복지 등을 고려한 선진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로 통합된 생명 공동체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입니다. 생태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동물권은 결코 어렵지 않아요. 인류와 동물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동물원의 미래를 여러분과 같이 고민해보아요🙏
#EFG RECOMMEND
🎬 [다큐/영화] 동물, 원
"인간들이 만들어낸 동물원에 대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너희들의 대답을 들어보고 싶어."
왓챠플레이에 실린 감상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에요.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동물원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동물을 진심으로 대하고 책임지려 노력하는 직원들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죠. 동물원에 대해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중립성'입니다. 동물원 관람객의 입장에서 담아낸 앵글과, 사육사 입장에서 바라본 앵글, 또 동물 입장에서 바라본 앵글 모두가 존재하죠. 안전한 삶을 보장받으며 야생동물답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과, 약육강식의 환경이지만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 어느 쪽이 최선일까요? 단 한 번만이라도, 동물들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 본 게시물은 2020년 5월 11일에 작성되었습니다.
✍🏻 코로나가 동물원에 남긴 것
코로나19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동물원에서 잇따라 비극적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독일의 노이뮌스터 동물원은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동물 안락사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해요. 국내 민간 동물원도 마찬가지로 직원의 단축근무는 물론 동물들의 먹이 양도 줄였다고 합니다.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인 삼정더파크도 최근 폐업했다고 하죠. 바이러스가 몰고 온 냉혹한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단기간 수입이 없어 동물을 굶겨 죽여야 한다면, 애초에 사업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처럼 동물원 속 동물들은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가 데려온 생명이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동물이 사는 환경을 결정하는 이들은 동물원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동물원을 방문하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EFG ISSUE : 동물원과 수족관
🤔 왜 동물원이 문제일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갔었던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했습니다. 저만 해도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가서 동물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죠. 심지어 동물을 만지기도 했습니다. 그땐 왜 그게 잘못된 건지 몰랐습니다. 제가 본 것은 사람들의 즐거워 보이는 표정과 맛있는 아이스크림 등...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로 가득했죠. 생명이 가득 찬 듯한 분위기에 덩달아 신이 났던 거 같아요. 하지만 동물권을 공부하는 지금은 '오락'으로서 동물원을 소비하는 것에 회의를 느낍니다. 왜일까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는 철저히 인간의 시각에서 동물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즐겁다고 해서 동물들도 즐거운 것 아니라는 거죠. 동물원은 다양한 종의 동물들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고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하는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복지와 생명에 대한 존중은 얼마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동물원이 교육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하지만, 사실 우리는 굳이 동물원을 가지 않아도 동물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매년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큐를 보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죠. 다큐멘터리만큼 대자연의 경이를 쉽고 편하게 만나볼 수 있는 콘텐츠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동물원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국 '인간'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 아닐까요?
👀 우리는 언제부터 동물을 타자화 했을까?
아주 오래전에는 인류와 동물이 공생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머지않아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고 계급과 권력이 생기면서, 우리는 동물을 권력의 상징, 소장품으로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등장하는 많은 동물들과, 기원전 1000년 솔로몬 왕이 야생동물을 키웠다는 사실이 그 예죠.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동물을 타자화 해왔고, 재산이자 특권으로 취급해 온 거죠. 초기의 동물원은 그러한 인식에서 생겼습니다. 동물을 사육하고 전시하는 등, 오락의 대상으로 삼는 공간이었죠. 심지어 동물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동물원에서는 사람을 전시한 적도 있었습니다. (동물원의 역사를 자세히 다룬 뉴스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셔요💁)
👊 야, 너두 (동물원 CEO) 할 수 있어.(???)
장성익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동물은 법적으로 '재물', 즉 물건입니다. 2018년 9월 기준으로 공식 등록된 동물원이 84곳에 이르지만, ‘허가제’가 아니라 누구나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는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죠.
그 와중에 동물 사육의 구체적인 기준도 없고, 사육 환경을 제대로 점검하는 절차와 의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동물을 직접 만져도 되는 ‘체험형 동물원’도 있고요, 동물을 손님이 원하는 곳까지 데려가서 보여주는 ‘이동식 동물원’ 등과 같은 유사 동물원도 있습니다. 그뿐일까요? '라쿤 카페', '고양이 카페' 등 '야생동물 카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체험형 동물 카페는 보통 '식품접객업', '자유업'으로 분류되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현 동물원법상 '10종 또는 50 개체 미만'일 경우 동물원으로 등록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 복지 사각지대가 늘고 있는 셈입니다.😰
(+좋은 소식 추가! 2022년 11월 24일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야생생물법) 등 5개 환경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해요! 동물원, 수족관을 기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동물에게 고통 주는 행위가 금지되며 고래류 전시, 동물카페 등이 금지된다고 합니다.)
😨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동물은 '0원'?
이처럼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우리 일상에 흔하게 존재합니다. 펫 샵에서 강아지를 구매하는 것, 동물원의 동물들을 거래하는 것도 동물을 재산으로 보는 경우죠. 실제로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사자 4마리를 1320만 원에 매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이곳저곳에서 일본원숭이 2마리, 2016년에는 라쿤(미국 너구리) 3마리가 매물로 나오기도 했죠.
에버랜드에 사는 전체 동물의 가치는 대략 10억 원의 가치로 추측되고 있는데요. 여기서 놀라운 점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동물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어 자산 가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0원'입니다. 장부상 가치가 0원이라는 것은 재무제표에 자산이 적게 기록된다는 걸 뜻하는데요. 이를 악용하면 세금을 덜 낼 수도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는 '역 분식회계'라고 합니다.
😕 상품이 뭐가 어때서요?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차근차근 짚어 봅시다!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게 왜 문제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동물을 상품으로 간주할 경우, 공장식 축산처럼 동물을 잘못된 방법으로 관리한다는 겁니다(사실 관리한다는 단어도 좀 걸리긴 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코로나와 같이 전염병이나 재난이 닥쳤을 때, 동물은 물론 사람 또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1) '감금 사육'이라는 동물 학대
현재 동물복지 선진국에선 동물원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물론 허가제라고 해서 모든 곳이 바람직하게 운영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동물들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동물 복지를 늘리는 추세죠. 실제로 파리 동물원은 돌고래, 코끼리, 북극곰같이 활동 반경이 큰 동물은 아예 전시하지 않고 있고요, 샌프란시스코 동물원도 2004년 이후로 코끼리를 전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물 체험'도 우리나라의 체험 동물원과는 꽤 다른데요. 살아있는 거북이 대신 죽은 거북이의 등딱지를 만져보게 하고, 양 대신 소복하게 모아 놓은 양털을 만지게 하고 있어요. 심지어 생태 선진국으로 알려진 '코스타리카'는 2013년, 정부가 동물원을 폐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죠.
반면 한국의 현 동물원 관리법은 놀랍게도 시대를 역행한 수준인데요. '동물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만 적혀 있을 뿐 어떤 세부기준도 없기 때문이에요. 그로 인해 동물원이나 수족관 등, '전시를 위한 감금상태'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직, 간접적 학대 행위가 발생하고 있어요. 야생성을 표출할 수 없는 사육 환경에서 사는 경우, 그곳에서 관람객에게 장시간 노출되는 경우 모두 감금 사육으로 인한 간접적 학대입니다.
KBS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정식 동물원으로 인정받은 어느 동물 체험 시설에는 배설물을 보다 쉽게 처리하기 위해 철망 구멍 사이로 발이 빠져나가는 우리를 사용했다 해요. 어느 이동식 동물원에서는 작은 철장이나 이동장에 동물들을 넣고 겹겹이 쌓아 운송했고요. 어느 대형 아쿠아리움에서는 사자와 같이 생활 반경이 넓은 야생동물을 실내에서 전시하고 있었고요. 그로 인해 동물들은 쉴 새 없이 같은 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해요.
2) 전염병, 질병 확산의 원인
앞서 말한 동물원의 감금 사육은 비교육적이고 동물학대적인 요인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공중보건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요. 현 동물원 관리법 상 대부분의 야생동물 카페나 이동형 동물원은 동물들의 질병 상태 등을 공개할 의무가 없는데요. 이는 바꿔 말해 우리가 동물들의 건강상태는 물론, 질병 예방 시설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뱀을 둘러보거나 원숭이와 악수하고, 동물에게 입을 갖다 대는 등 어떤 식으로든 야생동물을 접촉하게 되면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아이와 같이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대부분 아이들이 동물과 접촉하지 않나요?🧐)
실제로 애니멀피플의 카드뉴스에 따르면, 체험형 실내 동물원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동물들이 폐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요. 그 밖에도 동물원법에 등록되지 않아, 질병 관련 보고 의무를 지지 않는 야생 동물 카페만 전국 50여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반대로 사람과의 접촉으로 외려 동물이 질병에 걸릴 수도 있어요. 실제로 미국 뉴욕 브롱스 동물원에서는 동물원 직원에 의해 호랑이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또 대부분의 국내 실내 동물원에서는 좁은 공간에 여러 종과 동물들을 같이 전시하는 '종 합사'를 하고 있는데요. 황주선 수의학 박사는 "엄격한 원칙 없이 종들을 합사하게 되면, 감금되어 있는 동물들 간 질병 전파를 촉진시킨다"라고 말했습니다.
🧑⚖️ 동물을 위한 법은 어디에
이처럼 동물원 속 동물들은 복지와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법률은 2016년 5월,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이라는 이름으로 드디어 통과됐죠. 그 전까지 동물원수족관법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나, 자연공원법에서 부분적으로만 규정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아요. '동물원 동물에 대한 복지와 학대방지'에 관한 규율은 턱없이 부족하죠. 동물원수족관법 제 1조를 보면, "야생생물 등의 보전/연구, 국민들에 대한 정보 제공, 생물다양성 보전"이 적혀있어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나 동물 복지 증진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죠. 처음 시행된 제정법인만큼, 많은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참고 : <동물법, 변호사가 알려드립니다>
🤔 앞으로의 동물원
우리나라는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원이 문을 연 지 100여년이 흘렀음에도, 동물원 내 동물복지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어요. 동물원 관리는 지난 2016년 『동물원・수족관법』제정으로 비로소 국가의 관리 범주 내로 들어오게 됐지만, ‘동물복지’ 관련 규정은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죠.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온전히 살기를 원합니다. 나름의 존엄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죠. 하지만 우리는 동물을 인간과 다르게 보고 있어요. 심할 경우 그들이 누려야 할 자유와 삶의 기쁨을 부정하고 착취하죠. 동물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사람'도 차별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물원의 존재에 대한 찬반을 말하기보다는, 동물원이 가진 본질과 우리가 동물원 관계자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싶어요. 오늘날 동물원은 단순히 동물을 전시하고 관람하는 곳에 그치지 않아요.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보전 및 보호하고, 국민들이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체험하게 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죠.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동물을 사육하는 시설이기에, 동물 복지와 생명의 존엄을 고려해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동물원과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소규모 전시 시설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동물을 기르고 있어요. 그로 인해 동물복지, 안전 관리, 질병 관리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공중 보건과 동물 복지 등을 고려한 선진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로 통합된 생명 공동체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입니다. 생태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동물권은 결코 어렵지 않아요. 인류와 동물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동물원의 미래를 여러분과 같이 고민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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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영화] 동물, 원
"인간들이 만들어낸 동물원에 대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너희들의 대답을 들어보고 싶어."
왓챠플레이에 실린 감상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에요.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동물원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동물을 진심으로 대하고 책임지려 노력하는 직원들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죠. 동물원에 대해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중립성'입니다. 동물원 관람객의 입장에서 담아낸 앵글과, 사육사 입장에서 바라본 앵글, 또 동물 입장에서 바라본 앵글 모두가 존재하죠. 안전한 삶을 보장받으며 야생동물답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과, 약육강식의 환경이지만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 어느 쪽이 최선일까요? 단 한 번만이라도, 동물들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 본 게시물은 2020년 5월 11일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