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유럽에선 판매 금지, 케냐에선 절찬리에 판매 중?

이엪지

*보다 깊은 리뷰를 위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줄거리


국제화학기업들은 유럽에서 오래전에 사용이 금지된 고독성 농약을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소규모 농민과 소비자에게 판매해왔어요. 이 농약은 인체에 암을 유발하고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금지되었지만, 케냐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아무런 규제 없이 누구나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기업이 내세우는 "안전하고 풍족한 수확"만을 믿고 화학 제품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좇으면서, 자연과 인간의 건강을 해치며 경제적 이익을 챙겨 온 기업들의 민낯을 밝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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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떻게 봤어?


올리브 : 57분 정도의 짧은 영화였는데, 몰랐던 사실이 쏟아져서 받아적느라 관람하는 데 오래 걸렸어. 지금까지 본 3개의 영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강렬하기도 했고.


브랜디 : 나는 오늘 이 영화를 포함해서 총 5개의 영화를 봤는데 ‘환경영화제에서 영화 일정을 이렇게 짜 놓은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어. 오늘 상영한 영화들이 다 조금씩 연결되는 지점이 있더라고. 그걸 중심으로 넓게 보려고 하다 보니 이전 영화들과는 조금 색다른 느낌을 받았어.


그중에서 독성 거래는 일단 시각 자료들이 풍부해서 보기 편했던 것 같아. 그림이나 그래프뿐만 아니라 텍스트도 화면에 띄워서 설명을 해주니까 잘 와닿았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이었는데 쉽게 잘 전달해준 것 같아. 또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나와서, 다큐였지만 기승전결이 느껴졌어. 나 역시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




누군가에겐 자본을, 누군가에겐 죽음을 안겨주는 그린워싱


올리브 : 사실 화학제품의 위험성이나 농업과의 관계는 예전에 뉴스레터에서도 다룬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 영화로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의 실태를 알고 나니까, 정말 모르는 게 여전히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특히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화학 제품은 위험하다’는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권력이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가, 기업 그리고 농민들 간의 관계를 볼 수 있어서였어. 또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먼 나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도 바로 옆에서 벌어진 것처럼 생생했거든. 화학제품의 오남용으로 토양이 오염되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오염이 됐는데, 그 물이 전 세계를 떠돌면 결국 우리 근처까지 오는 거잖아. 실제로 영화에서도 ‘농약이 30년 뒤에도 바다와 토양에 잔류하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니까. 결국 모두의 문제인 거지.


브랜디 : 그래서 그게 너무 화가 났어. EU가 위험한 화학약품을 EU 내에서 유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 외 국가에 판매하는 것에는 제재가 없잖아. 실제로 유럽에서 수입된 케냐 내 농약은 3개에 1개 꼴로 유럽에서 금지된 약품이었고. 이중잣대가 결국은 자국민을 해칠 수도 있는 건데, 너무 내 일 아니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행동하는 것 같아.


올리브 : 어쩌면 국민을 위해서라기보다 ‘국가’의 이익만을 생각했던 걸지도 몰라. 이 영화가 그런 이중잣대를 잘 꼬집었다고 생각해. 이중잣대 얘기하니까 꿀벌에 관한 내용도 생각났는데, 벌이 멸종하면 인간도 위험하다는 말이 있잖아. 그래서 독일 국내에서는 벌에게 악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데, 막상 독일 내 기업인 바이엘은 케냐에 화학물질을 수출하고 있어. 그로 인해 현재 케냐에서 벌 개체수가 크게 감소했다 하더라고. 자국민은 보호하되, 타국민은 내 상관이 아니다(?)는 태도인 거지. 영화에서는 이런 태도를 '이중잣대'라고 말하는데, 이중잣대는 윤리적으로도 잘못됐지만 정보의 격차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특히 잘못된 거 같아.


브랜디 : 맞아. 바이엘의 특허 약 중 하나인 ‘이미다클로프리드’가 케냐 내 여러 기업들이 판매 중인 56개 제품에 포함돼 판매되고 있는데, 이 약품 5g만 있으면 10억 마리의 벌을 죽일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어. 바이엘은 의혹에 대해 해명할 때 “저희는 OECD 국가에 등록된 제품만을 판매한다.”며 소비자들을 안심시켰는데, 사실 이 말은 ‘모든 OECD 국가에서 금지되지 않는 한 판매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한 거잖아. 허용하고 있는 국가가 하나라도 있으면 판매가 가능한 거지. 실제로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금지된 성분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케냐에서는 어떤 성분이 들어간 제품도 판매할 수 있는 거야.




정부는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올리브 :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그 부분에서 ‘정보의 격차’를 느꼈어. 케냐의 환경단체에서 바이엘 제품을 검사하려고 해도, 회사 측에서는 기업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잖아. 케냐에서 아무리 연구를 하려고 해도 자료를 주지 않으니, 화학제품과 건강상태의 관련성을 입증할 수도 없는 거지.


게다가 케냐 농업은 바이엘이나 몬산토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크잖아. 그 점에서 국가 간 권력의 차이도 느꼈어. 그래서 그런지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히려 화학제품 기업들과 손을 잡더라고. 화학 약품이나 환경 보호에 대한 국가의 낮은 인식이, 국민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이 정보의 격차가 가진 위험성이라고 생각해.


제초제를 뿌린 땅은 다시 살아나기 무척 어렵기도 하고, 제초제나 살충제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소농들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거잖아. 영화 초반에 보면 케냐에서 제초제를 뿌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데, 그분은 제초제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이수했을 뿐이었어. 정보의 격차가 장기적으로도 위험하다는 걸 느끼게 해 준 부분이었지.


하지만 특정 국가만을 비난할 순 없는 게, 케냐를 포함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을 공급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 같아. 또 케냐 국민들이 화학 제품의 위험성을 못 느끼고 있는데 과연 국가가 움직일까 싶기도 하고. 국가 간의 권력 관계와 정보의 격차 등 다방면으로 문제를 보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봐.




브랜디 : 글쎄, 나는 ‘과연 국가도 모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케냐 정부의 그런 행동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이해하지만, 토종 품종을 사용하며 종자도 직접 번식하는 소규모 농민들을 처벌하기로 결정한 부분에서 정말 화가 많이 났거든. 농민들과는 상관없는 국가의 이권 추구만을 위해 제정된 법 같았어. 게다가 처벌도 말도 안 되게 강력해. 1천만 케냐 실링을 벌금으로 지불하거나 5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데, 1천만 케냐 실링은 한화로 약 1억 원이고 케냐의 일반 국민들이 무려 8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해. 정부의 이런 태도가 과연 그냥 ‘그래, 이 나라 상황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지.’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인가? 정말 벌을 받아야 하는 건 소비자를 기만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들인데, 모든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게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지점이었어.


올리브 : 나도 그 장면 보면서 정말 기겁하긴 했어. 영화를 보면 토종 종자는 다시 심어도 수확도 잘 되고 생산량도 좋은데, 기업의 종자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생산량이 오히려 줄기도 하고, 작물이 쉽게 시든다고 나오잖아. 기업이 의도적으로 계속 자사의 농약과 종자에 의존을 하게끔 만드는 거 같아. 토종 품종 사용 금지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소규모 농민 중 3/4이 토종 품종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대기업 화학제품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케냐는 자급자족 국가였던 거지. 


만약 몬산토나 바이엘 같은 기업이 이제 막 발전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를 상대로 ‘우리 종자를 써야 성공할 수 있다’며 로비를 한다면? 혹은 대기업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져서 국가보다 기업이 강한 상태라면, 국가가 강하게 나갈 수 있을까? 물론 생산성과 효율성에만 혈안을 두는 케냐 정부도 문제를 직시할 필요는 있다고 봐. 


브랜디 : 위에서 말했던 오늘 본 영화들끼리 연결되는 부분을 얘기해보자면, <기후 엑소더스>라는 영화에도 케냐를 배경으로 한 장면들이 있었어. 심지어 <독성 거래> 후반부에 나왔던 투르카나라는 지역이 똑같이 나오거든. <기후 엑소더스>는 기후 난민에 대한 영화야. 투르카나에 연달아 닥친 가뭄과 홍수로 인해서 식량을 구하기 힘들어지고 생계가 위험해지자 많은 주민들이 떠나게 되는데, 홍수가 일어나기 전 날 이런 안내 방송이 나와.


“해수면 상승에 따라 당국은 8일부터 홍수 경보를 발령합니다. 제방 결함으로 주택 침수 위험이 있습니다. 해변 지역 주민은 며칠 안에 대피해야 합니다. 섬 안에 집을 지을 수 있는 곳은 없으며 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이주 대책도 없습니다. 알아서 이주해야 합니다. 침착하게 지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무질서는 더 큰 피해를 낳습니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정부나 마을 운영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어. 이 나라 정부가 정말 자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싶더라고.


또 교육의 중요성도 크게 느꼈어. 교육 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계속 화학약품과 바이엘의 종자를 의심 없이 사용하는 거잖아. 케냐인들에게 종교가 굉장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기후 위기를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더라고. <기후 엑소더스>를 보면 

“기후가 이렇게 변한 건 모두 신의 뜻이에요. 전통 방식으로 제사를 안 지내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비가 안 오는 거예요.”

라는 말이 나오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해. 그런데 과연 정부도 ‘신의 뜻이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오늘 내가 찾아본 내용에 따르면, 케냐에서 독재 정권을 오랫동안 했던 대니얼 아랍 모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군사정부 시절에 아주 대대적인 벌목을 했거든. 그래서 그 당시 국민들은 식량을 찾기 위해 정말 먼 곳까지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대. 이후 정부는 그 과오를 바로잡겠다고 환경 정책을 펼쳤는데, 그게 바로 '비닐 사용 금지'였어. 어길 시에는 징역 4년에 처해지고 최고 3만 8천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처벌이래. 나는 이 나라 정부도 정말 큰 문제라고 봐.



앞으로의 농업이 가져야 할 질문


브랜디 : 오늘 본 영화들에 케냐가 계속 나와서 케냐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케냐의 빈부격차가 정말 심각하더라고. 구글에 ‘케냐 빈부격차’를 검색하니까 코트라에서 나온 ‘케냐 최상류층 0.02%를 공략하려면?’이라는 글이 있었어. 그 자료에 따르면 케냐 내 부자의 수가 폭증 중이고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래. 


그래서 올리브가 아까 말한 ‘정보의 격차’가 굉장히 공감됐어. 돈이 많은 사람들은 교육의 기회를 얻을 것이고, 이런 문제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사실 우리가 지금 케냐만 주목해서 보니까 케냐가 되게 심각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케냐가 그나마 중동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사람이 살만한 나라로 꼽힌다는 것도 충격이었어.


올리브 : 사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비슷한 것 같아. 우리나라에도 정보의 격차라는 게 존재하고, 다양한 농약을 사용하고 있는데 유기농 작물에 대한 기준도 애매하고, 정부는 소규모 농부들에 대한 지원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정부가 자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것 같아.


브랜디 : 물론 우리나라에도 그런 정보의 격차가 있긴 하지만 차이점이 느껴진 건,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논란이라는 게 있다는 거? 예를 들어 GMO만 해도 계속해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잖아. 국민들의 유기농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고 있고. '논란이 있다'는 걸 '좋은 방향으로 가는 과도기'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인데, 케냐에는 그런 논란조차 없고 모두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니까. 그게 참 안타깝더라고.


올리브 : ‘농업’이라는 분야에 대해 정부도 자국민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하는 것 같아. 앞으로의 농업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 것인지 논의가 이루어지면 더 좋을 것 같고.



문제는 거대하고 견고하다


올리브 :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환경 파괴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하잖아. 그런 선진국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도 들었는데, 정말 환경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자국의 이익을 따지는 태도인 것 같아. 내로남불이라고, 본인들은 누릴 거 다 누리고 있으면서 개발도상국이 산업적,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건 싫다는 거잖아. 여기서도 이중 잣대가 보였는데, 중국의 수많은 공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made in china'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참 모순적인 것 같아. 본인은 일단 가격이 싼 제품을 찾으면서, 중국만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


브랜디 : 맞아. 개발도상국이 발전하면서 환경이 파괴돼도, 선진국 국민들보다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피해가 훨씬 더 클 확률이 높잖아. 오늘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던 게, ‘대체 이 사람들이 잘못한 게 뭐지?’였어. 온갖 그린워싱으로 타국 국민들을 피폐하게 만들면서 그 나라 사람들을 환경 파괴자로 몰아가는 건 정말 잘못됐지. 


‘과연 우리나라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라는 생각도 들었어. ‘우리나라는 과연 개발도상국에 대한 착취가 없는가?’ 사실 위에서 얘기한 코트라의 자료만 봐도 없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누군가는 돈을 번다는 거니까.


올리브 : 맞아. 지금 세상은 코인이나 주식처럼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잖아. ‘친환경이 뜬다'고 하면 친환경적인 삶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친환경 주식을 사고 ESG 기업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처럼 말이지. 이런 현상을 보다 보면, 내가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나? 싶은 생각도 들고 마음이 복잡해지더라고.


브랜디 :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 어쨌든 우리는 세상의 관심 밖에 있는 것들에 주목하고 있으니까. 내 생각과 주장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갖고 있는 게 좋겠지만, 나는 우리의 방향성만큼은 결코 틀리지 않다고 믿어. 코인이니 주식이니 이것도 어쨌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생각인 거잖아. 누군가는 그냥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누군가는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엿볼 틈이 있다는 거니까, 잘못된 건 맞다고 생각해. 지금 우린 ‘농작물, 종자’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를 봤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자본주의가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문제가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영화에서 다룬 문제 하나만 해결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다 얽혀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