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라고?; |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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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G REVIEW : 미디어 속 여성혐오


🍛 여성 게스트가 왜 남의 집에서 요리를?


영상 : ⓒ JTBC Entertainment, 한끼줍쇼 15회


🟢올리브 : 설현이 초면인 사람의 집에서 대뜸 전을 부치고 있는 장면이야. 다른 남성 패널들은 식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와중에 설현이 도와드리겠다며 주방으로 향했지. 그냥 혼자 일하시는 게 신경이 쓰여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는데, 방송에서는 이걸 "엄마와 딸처럼 저녁 준비"라면서 프레이밍을 하더라고. '엄마와 딸처럼 하는 저녁 준비'는 대체 무엇이며, 서로 초면인 사이를 왜 갑자기 '엄마와 딸'로 엮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어.

 

🟠브랜디 : 갑자기 요리를 도운 건 설현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제작진의 연출이었을까? 사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여성에 대한 성역할 프레임 때문에 나온 장면이라고 생각해.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은, 누군가의 집에 찾아가서 밥을 '얻어먹는' 프로그램이잖아. 이 프로그램을 자주 본 건 아니지만, 난 한 번도 남성 패널이 요리를 돕는 걸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설현이 나서서 요리를 돕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가 참, 기이하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져서 씁쓸하더라고.


🟢올리브 : 그런 걸 보면, 난 '무지'도 권력이 아닐까 생각해. 설현이 무의식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여성이 얼마나 젠더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 그러고 보니 강화길 작가의 <음복>이라는 소설이 생각나네. 여성은 집안의 모든 뒤치다꺼리에 개입되는 존재지만 남성은 몰라도 되는, '무지'라는 권력을 스릴러적으로 표현한 소설이거든.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의 모든 복잡한 고민들에서 벗어나는 거지. (이 소설 꼭 읽어봐! 강력 추천👍)



📺 한국 예능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


영상 : ⓒ KBS 다큐, 다큐멘터리 개그우먼


🟠브랜디 : 위 영상은 예전에 재밌게 봤던 <다큐멘터리 개그우먼>이라는 다큐야. 한때 무한도전, 1박 2일, 남자의 자격 등 남성들끼리만 하는 예능이 주가 되면서, 여성 개그맨들이 일자리를 잃었던 시기를 언급하고 있어. 그런 예능에서는 '어리고, 예쁘고, 귀여운' 여성 패널들이 게스트로 나와 '감초' 역할을 하곤 했지. 남성들만 있는 예능에서 게스트를 소개할 때 "오늘 게스트 여자야?"라는 말은 지금도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어. 남성 게스트나, '예쁜' 이미지와 반대되는 여성 게스트가 등장하면 떨떠름해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항상 같은 패턴이야.


🟢올리브 : 맞아. 심지어 그런 반응에 뭐라고 하면, "예능인데 왜 그러냐, 웃기려고 그런 거다."라고 하면서 당사자를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사람으로 몰고 가잖아. 성별을 떠나서 누군가의 외모, 외형을 두고 그걸 유머로 소비하는 게 진짜로 웃기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요즘에도 인기 있는 예능을 보면, 남성이 출연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메인 mc도 남성이잖아. 설령 여성 출연진이 있다 해도 1명에서 2명 정도, 아주 소수에 불과해. 출연진뿐일까? 제작진도 비슷하거나 더 심하겠지. 출연진과 제작진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남성에 편중된 조직이라면, 촬영이나 제작 과정에 있어서 남성 위주의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브랜디 : 외모 이야기를 들으니 코미디빅리그의 '슈퍼차 부부'가 생각나네. 요즘도 방영되고 있는 코너인데, 어리고 예쁜 여자 개그맨이 부부의 갈등 요소로 등장하고, 몸집이 큰 여성은 먹는 거에 '환장하는' 이미지로 나오거든. 최근에 가수 전소미가 '슈퍼차 부부'에 나오는 이은형, 강재준 부부와 춤을 추는 챌린지가 있었어. 이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는데, 어린 여자아이돌 옆에서 유부남이 히히덕거리며 춤을 추고, 그걸 본 아내가 머리채를 잡는 장면을 굳이 왜 연출했는지 나도 이해가 잘 안 되더라고. 그냥 춤만 추면서도 충분히 재밌는 요소를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 임신으로 육아휴직을 노렸다고요?


영상 : ⓒ 디글 클래식, 미생 5화


🟠브랜디 : 셋째 임신 사실을 숨기고 무리하게 일하다가 쓰러지는 사원을 보며 남자 사원들끼리 "여자들은 의리가 없다."고 말하는 <미생>의 한 장면이야. 나는 이 클립의 댓글이 인상적이었는데, '어쨌든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으로 일을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일을 더 하게 되는 거 아니냐. 욕 먹을 만 하다.'는 의견이 생각보다 많았어. 첫째, 둘째도 아니고 셋째는 육아 휴직을 노린 거라나? 물론 월급은 똑같이 받는데 업무량이 증가하면 화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게 육아 휴직을 하는 사람이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될까? 충분한 인력만 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갈등인데, 마치 개인의 문제처럼 만들어 버린 게 화가 나. 정당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은 국가와 기업은 뒷짐 지고 소위 '을'들끼리 언성 높이며 싸우는 걸 지켜만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올리브 : 애초에 임신 사실을 숨기고 무리하게 일하게 만든 조직 문화와 분위기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해. 위에서도 말했지만, 다양한 존재가 조직 안에 들어 있어야 좀 더 다양한 존재를 생각할 수 있게 될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그 문제가 답습되고 있는 것 같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에서도 다양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임신을 한 상태로 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여성도 있고, 출산 후 회복이 느려서 좀 더 오래 쉬어야 하는 여성도 있잖아. 그런 개인차를 고려해서 더욱 유연하고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



🤷‍♀️ 상사의 무리한 요구가 로맨틱코미디?


영상 : ⓒ tvn D ENT, 김비서가 왜 그럴까 1화


🟠브랜디 :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이야. 부회장인 영준이 다짜고짜 비서인 미소 집에 찾아가서 결혼하자고 하는데, 나는 이걸 처음봤을 땐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심지어 세상 물정 모르고,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는 영준이 서툴게 구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 보니 연출 방식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배경음악을 로맨틱하게 깔고, 회상 장면을 코믹하게 그렸잖아. 시청자들이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게끔 말이야.


🟢올리브 : 나는 특정 직업을 잘못된 시선으로 이미지 메이킹하거나 성적대상화 하는 걸 굉장히 경계하는 입장이야.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인 게, '비서가 상사 넥타이를 매주는 직업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김비서가 부회장의 넥타이를 매주는 장면이 많아. 이런 장면들로 인해 비서라는 직업의 전문성이 가려지고 성적 대상화가 일어난다면,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까?


🟠브랜디 : 비서도 그렇지만, 간호사나 승무원에 대한 프레임도 심각한 것 같아. <드라마 스테이지 2021>의 '민트 컨디션'에서는 땋은 머리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빨간색 네일아트까지 하고 있는 간호사의 모습이 등장해 비판을 받았지. 이전에 비슷한 이유로 논란된 경우가 많은데도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놀라워. 


🟢올리브 : 맞아. 게다가 영준은 미소에게 무례하게 구는 경우가 많잖아. 갑자기 신체적인 터치를 한다던지, 나가려는 미소 앞에 가서 문을 쾅 닫는다던지. 현실이라면 상당히 무서운 상황인데, 이걸 로맨틱하게 연출해서 시청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주고 있어. '드라마는 드라마다', '착각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런 문제를 가만히 둘 수는 없다고 봐.



🙄 이게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라고?


영상 : ⓒ KBS 한국방송, 오케이 광자매 11화


🟠브랜디 : 이 드라마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하자면, '광남'은 몸매에 대한 강박 때문에 임신을 꺼려하던 인물이야. 그런데 남편인 '변호'가 다른 여자인 '마리아'와 바람이 나서 아이를 낳았어. 그 사실을 알게 된 광남의 가족들이 마리아에게 찾아가서 다짜고짜 욕하고 막말을 퍼부어. 마리아는 항상 기죽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지. 그 이후 마리아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게 돼. 마리아의 죽음 이후 광남과 변호의 사이는 가까워지고, 비출산을 고집하던 광남은 시험관 시술까지 감수할 정도로 임신을 원하게 돼. 함께 사는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으면서도 말이야.


이 드라마를 소비하는 연령층이 젊은 편은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것 역시 반응이 꽤나 충격적이었어. 광남이라는 캐릭터가 집에서 놀면서 남편 밥도 안 해주고 아이도 낳지 않는 이미지다 보니, 남편인 변호를 불쌍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고, 바람난 게 이해가 간다는 의견도 많았어. 이 상황에서 바람을 핀 건 변호와 마리아인데, 마리아에게만 그 죄를 묻는 흐름에 대한 지적도 보이지 않았지. 오히려 시청자들도 같이 마리아만 욕하는 분위기더라고. 비출산을 고집하던 광남이 갑자기 임신을 원하게 되는 서사도 이해하기 어려워. 꽤나 인기가 많은 드라마 같던데,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야.



😕 여성은 마음껏 장난쳐도 되는 대상이 아닙니다만


영상 : ⓒ officialpsy, 싸이 GENTLEMAN M/V


🟠브랜디 : '강남스타일'로 한류 스타 이미지를 만들어 냈던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당시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긴 했지만, 싸이의 국위선양을 기원하는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어. 다시 보니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질의 뮤직비디오더라고. 선탠을 하는 여성의 비키니 끈을 풀어버리고, 커피를 마시는 여성의 잔을 툭 치는 장면은 여성을 '장난의 대상'으로 보는 혐오적 행동이야.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지. 캔맥주의 하얀 거품을 흩뿌리는 싸이와, 상대 역으로 출연한 가인이 그 앞에서 하얀 소스를 듬뿍 바른 오뎅바를 물고 있는 모습은 포르노그래피를 연상시키기도 해.     



🎧 이 뮤비에 담긴 것 : 소아납치, 감금, 성희롱, 폭행...


영상 : ⓒ Stone Music Entertainment, Jackpot MV


🟠브랜디 : 한때 정말 즐겨듣던 노래인 블락비의 'JACKPOT' 뮤직비디오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건 가히 충격적이었어. 다시 보니 촬영 당시 만 13세로 소아였던 배우 김새론을 기절 시켜 납치, 성희롱, 폭행, 무기로 위협, 감금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4분 내내 등장하더라고. 김새론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계속해서 악질적인 폭행에 시달리고, 마지막에 탈출에 성공한 후에도 뒤쫓아가는 블락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뮤직비디오를 만든 걸까?



🎤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된 혐오


사진 : ⓒ 김효은 '머니로드' 가사 중 일부. 현재는 수정됨.


🟠브랜디 :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유독 힙합곡에 여성 혐오적 코드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여성을 남성을 위한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여기는 성향이 문제 되어왔지. 2015년, 쇼미더머니4에 출연한 송민호가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를 써서 비판을 받았던 일이 있었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던 송민호는 2년 뒤인 2017년에 'Motherfucker만 써도 이젠 혐이라 하는 시대'라는 가사로 돌아왔지. 2019년에는 사이먼 도미닉의 'make her dance' 뮤직비디오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곡의 프로듀서 중 한명이 자신의 SNS에 '조선 시대에서 음악하기 힘드네. 보기 싫으면 보지 말고 듣기 싫으면 듣지 말깅'이라는 글을 게시했어. 이걸 정말 예술적 표현,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 있을까?



🙅‍♀️ 남자만 바라보는 여자?


영상 : ⓒ KBS 동물티비, AOA 여자사용법


🟠브랜디 : 여성 가수, 특히 걸그룹의 노래에서는 '이렇게 멋진 난데, 왜 너는 몰라주니.'라는 느낌의 가사가 자주 등장해. 여성을 표현하면서 남성의 존재를 지우지 못하는 거지. 이런 가사는 특히 프로듀서 박진영이 작사한 곡에서 잘 드러나. 남자 때문에 설레어 어쩔 줄 모르거나, 남자에게 일침을 날리는 묘사를 반복하는 편이거든.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통해 박진영이 프로듀싱한 그룹 언니쓰는, 팀의 컨셉을 위해 방송에서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고 레퍼런스까지 제시했지만, 결과물은 바람피우는 남자에게 경고하는 이야기가 담긴 'SHUT UP'이라는 곡이었지.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인 ITZY(있지)의 '마.피.아. In the morning'은, '마피아'라는 흔치 않은 컨셉으로 너무나 흔한 사랑 얘기를 하면서 팬들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어.



 🙏 미디어에겐 감수성을, 시청자에겐 주체성을 바라요


사진 : ⓒ MBCentertainment, 라디오스타


🟢올리브 :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뉴스레터를 준비하면서 찾아보니까 여성혐오적인 콘텐츠들이 정말 많았어. 옛날 영상과는 다르게 요즘의 미디어는 참 교묘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우리는 특정 방송에 나온 음식을 따라서 주문하기도 하고, 클리셰 듬뿍 묻은 드라마에 열광하기도 하잖아.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고 향유하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주체적으로 미디어를 읽는 태도도 길러야 한다고 봐.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렵잖아. '미디어 리터러시'와 같이, 주체적으로 미디어를 읽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브랜디 :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였던 건, 최근 아이돌 시장을 중심으로, 젠더의 경계를 넘어선 '젠더리스'한 컨셉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거야. 젠더에 대한 인식도가 높은 비(非)남성이 주요 소비자가 되어 기존의 '남성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분위기지. 이런 흐름에 뒤쳐지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걸 보니, 소비자의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 나더라고. 아이돌 시장을 넘어 TV 매체, 그리고 현재는 TV보다 더 영향력 있는 유튜브 시장에도 이런 분위기가 더 넓게 형성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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