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어린이, 청소년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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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 네이트판에 올라왔다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제가 다니는 학교가 갑자기 유명해진 적이 있어요. 같은 반 친구 ‘A’가 네이트판에 교과교실제와 선택자율학습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던 건데요. 제가 기억하기로 당시 선택자율학습은 말만 ‘선택 자율'일뿐, 2교시 중 한 교시는 강제였어요. 교과교실제 또한 학생들이 짧은 쉬는 시간 동안 1층과 5층을 오가며 움직여야 했기에 무척 불편했죠. 


그때 제가 놀랐던 건 학교의 반응이었는데요. 글이 올라갔을 때만 해도 학교는 묵묵부답이었는데, 기자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A를 불러 설득하고, 혼내더라고요. 결국 A가 속한 반만 선택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나머지는 그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A의 학교 고발 사건은 막을 내렸죠.


당시 A는 존경의 눈빛을 받기도 했지만, “학생이 감히 모교를 고발하다니, 괘씸하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수업 중 A에게 대놓고 "너 잠깐 나와봐"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계셨죠. A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웠지만, 그 여파는 A가 홀로 견뎌내야 할 몫이었어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한 곳이 아니구나’라는 걸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청소년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해요. 하지만 과연 실제로 그런가요? 청소년 노동자의 사망 소식과 아동학대 사건, 과도한 입시경쟁 문화와 권위적인 학교, 청소년 미혼모 지원 감소 등.. 끊임없이 보도되는 인권침해 사례들만 봐도 이들의 인권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 수 있어요.🧐



💣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예전에 <종이는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적일까?> 뉴스레터에서 ‘주린이’, ‘요린이'를 쓰지 말자고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어린이를 차별하니까'라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못했는데요. 어쩌면 저 스스로가 그런 단어를 쓰지 말자고만 생각했지, 더 깊게 생각하려고 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러다 미디어스의 보도 중 일부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19-20세기 많은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자, 그들에게 공포를 느낀 사회와 어른들이 학교를 의무화하여 청소년이 낮 시간 동안 거리에 모여 있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가 나이(학년) 구분이라고도 설명한다. 경제 측면에서는 청소년이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구조, 가게들이 ‘보호자 동행 없이 18세 미만 출입 금지’ 간판을 내거는 현상, 청소년이 거리에 많이 보이는 동네를 어른들이 피하는 바람에 상권이 변화하는 현상도 청소년 혐오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고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왔던 교육 방식은 과연 청소년을 위한 것이었을까?’, ‘오히려 그들을 ‘관리’하는 비청소년의 편의와 욕망을 위한 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교육을 비롯한 모든 시스템은 어른들이 만든 거니까요. 


그 밖에도 요린이, 잼민이, 급식충, 중2병 등.. 우리가 흔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말에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편견과 그로 인한 구조적 문제가 있어요. “어린이는 미숙하다", “청소년은 아직 불완전한 존재다"라는 편견 말이죠. 실제로 ‘미성년자’라는 단어에 있는 ‘미(未)'는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은'의 뜻을 나타내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예전부터 이어져 온 성인중심주의적 시선이 아동∙청소년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려고 해요. 



🔥 성인중심주의를 고발합니다!


사진 : <스카이캐슬>, JTBC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각종 소수자를 이야기할 때, “우리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지켜야 하니까(반대한다)" 식의 주장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신기하게도, 사회에서 꽤 설득력 있는 것으로 여겨지죠. 이처럼 청소년은 같은 시민으로서 평등한 구성원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자 교육, 선도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어째서 이러한 담론이 합리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걸까요? 그들은 어째서 혐오의 핑계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삼는 걸까요?🧐


이 문제를 짚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 보호’라는 말에 숨겨진 ‘나이주의’와 ‘성인중심주의’를 인지할 필요가 있어요. 나이주의란 나이에 따른 사회적 현상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인데요. 실제로 청소년이 받는 차별 중에는 ‘나이’로 인한 억압과 위계 등, 나이주의와 관련된 문제가 많아요. 


또 관련 논문에 따르면 성인중심주의는 성인들이 청소년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는 것을 본질로 보는데요. ‘청소년은 성인보다 열등하고 또 성인보다 덜 중요하다’는 사고는 단지 문화뿐만 아니라 경제와 정치 등 여러 분야에 뿌리 깊게 박혀 있죠. 가령 근로기준법에서는 만 18세 미만의 연소자는 노동에서 보호받는 등 차이가 존재하고, 공직선거법 제60조에서는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 조항이 있어요. 


또 만일 청소년 당사자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도,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요(민사소송법 제55조 1항). 부모의 불법행위를 소송하기 위해 가해자인 부모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건, 사실상 청소년에게 재판청구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 청소년은 '미숙'해서 정치하면 안 된다고?


한국 아동ㆍ청소년 인권실태 연구Ⅴ: 총괄보고서를 살펴보면, 약 83%의 청소년들이 ‘청소년도 사회문제나 정치문제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제시하는 등 사회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는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청소년이 선거운동을 할 수 없어요. 공직선거법 제60조 1항 2호는 ‘미성년자(18살 미만)’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거든요. 또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등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청소년이 정당을 가입할 수 있지만, 한국은 청소년이 정당에 가입할 수 없어요(정당법 제22조).

더 놀라운 사실은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대하는 학교의 태도인데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 따르면,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학칙을 가진 학교가 64%, 집단행동을 처벌하는 학칙이 있는 경우는 82%에 달한다고 해요. 

2019년 말부터는 만 18세를 넘은 고3 학생들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졌는데요. 일부 단체에서는 “가족, 지인 등 주변으로부터 쉽게 선동당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고 해요. 하지만 한국청소년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청소년 중 52%가 총선 전 선거와 관련한 후보자, 정당, 공약 등의 정보를 얻는 등 사전 정보 습득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해요.


“성숙함이 참정권의 기준이라면 우리나라의 정치형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성숙하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엘리트주의일 것입니다. 참정권은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 18세 선거권 1주년 국회토론회, 이다슬 님 



🤔 대학을 거부하면 생기는 일



수능이 끝나고 거리를 돌다 보면 "수험생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라는 현수막과 각종 이벤트가 여기저기 보이더라고요. 수능이 끝난 그 주간만큼은 세상이 수험생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어딜 가든 수험표만 있으면 수험생 혜택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위 영상을 보고,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수능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됐어요. 저한테 수능은 너무나 당연했거든요. '청소년은 곧 학생이고, 고3이 된 학생은 곧 수험생이다'라는 당연한 생각이 저한테는 시각을 제한시키는 프레임이 된 거죠.


대학을 거부하면 어떤 일이 있을까요? 사실은 아무 일도 없는 게 맞지만, 대학 거부자들은 고용의 순간부터 차별을 겪고 있어요. 도서 <대학거부, 그 후>에 따르면, 종종 교육을 의뢰하는 쪽에서 학력을 적어야 하는 서식을 요청할 때가 있고, 학력에 따라 교육비(강사비)를 다르게 지원하는 기관도 있다고 해요. 또 대학생이 흔히 하는 '대외활동'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아, 스펙을 쌓을 경험의 기회조차도 평등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죠.


"그 네모반듯한 학력란 앞에서 내 자신이 너무나 작아져 버리는 것 같았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 방황과 경험을 '청춘'에게 독려하는 사회였지만, 그것은 대학생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 <대학거부, 그 후> 



⛔️ 국가적 범죄, 국제입양



한국은 입양부모가 아동의 출생 국가에 오지 않아도 입양이 가능했다는 점, 즉 '대리 입양'과 '우편 주문 입양' 제도가 2013년까지 유지된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한국은 ‘정상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아동을 국제입양 보내왔는데요. 


실제로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해외입양아동의 40%가 한국 아동이라고 해요. 국가적 사업 마냥 이루어졌던지라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을 정도였는데요. 2013년에는 “입양 아동의 인권을 지키겠다”며 헤이그아동입양협약에 서명했지만, 지금까지도 협약 비준이 안 되고 있어요. 😨


더군다나 국제 입양이라는 게 인종과 언어 등 완전한 타자로 살아가는 일이다 보니, 입양 당사자는 자라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다 학대까지 받는다면 인권 침해까지 발생하는 일인 거죠. 하지만 한국 국제입양의 행정 절차는 입양 아동의 의사를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요.


또 국제입양을 보내고 나면 입양 아동이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했는지 사후에 확인해야 하지만, 한국은 국적 취득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있어요. 국적 취득을 하지 못하면 입양 당사자는 한국인도 아니고 그 나라의 시민도 아니게 되는데요. 그로 인해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추방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죠.


사진 : unsplash.com


저는 꽤 험난한 사춘기를 보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 때는 전학을 한 번씩은 가서 그런지 완전히 정을 붙일만한 학교도 없었고,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친구 관계도 불안정했죠. 성격이 얌전한 편은 아니어서 저를 싫어하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한 번은 같은 반 친구가 저를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있는 카톡방에 초대해서, 몇 분 동안 단체로 욕을 퍼부은 적이 있었는데요. 학교 선생님께 말해야 하나 싶었는데, 저한테 욕을 한 그 친구들이 선도부인 걸 보고는 포기하고 그냥 넘겼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너무너무 후회돼요. 그때 포기하지 말고 당당하게 얘기할 걸, 사이버폭력을 당했다고 선생님께 말할 걸. 하지만 그때는 학교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요. 교육에 대한 학생의 의견조차 무시되는 곳에서 내 목소리는 얼마나 힘이 되나 싶었거든요. 그 당시의 저는 학교도, 선생님도 믿지 못했어요. 사춘기였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들 하지만, 사실 저는 사춘기나 중2병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청소년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목소리가 단지 '사춘기'와 '중2병'이라는 단어로 일반화되는 것 같거든요. 


지금, 청소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과감한 결석 시위로 기후위기를 알리고, 비청소년과 함께 현장에서 피켓을 들며 참정권을 요구하고 있죠. 시스템에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과연 '사춘기'라서 그러는 걸까요? 학생은 학생답게 공부나 해야 할까요? 


저는 이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게 된 이유를 먼저 짚어보고 싶어요. 학생의 목소리가 좀 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더라면, 학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만족하며 먹고살 수 있을만한 구조였더라면, 그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교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외려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엪지가 추천해요



보면서 너무나도 공감했던 강연이었어요. 직사각형 모양, 혹은 'ㄱ', 'ㄴ'자로 된 학교 건물이 정말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현상을 유현준 교수는 마치 '교도소' 같다고 말하는데요. 결국 학교의 정형화된 건축 공간과 획일화된 공간들이 아동∙청소년들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 올리브 : 획일화된 건물 속에서 12년을 살아온 학생들이 마침내 졸업을 하고 사회를 나가면, 갑자기 세상은 "너만의 길을 가!", "너의 개성을 뽐내!"라고 한다는 거. 너무 끔찍하지 않나요? 😨



이 영상은 제가 아동/청소년 인권을 3월 메인 토픽으로 잡은 이유가 된 영상인데요. 지금까지 제가 쓴 글을 읽지 않아도, 이 영상만큼은 꼭 봐주셨으면 해요. 세상이 정말 크게 잘못됐다고 느낀 순간은 통계도, 뉴스도 아닌 아이의 눈물을 볼 때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