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대면 다 아는 프랜차이즈에서 알바를 하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일을 가지 않기 시작했어요. "요즘 왜 일 안 나가?"라고 물었더니, "오지 말래"라고 답하더라고요. "직원만 일하기로 해서 알바는 안 나와도 된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어서 저도 모르게 따지듯 물어봤어요. "아니 나름 유명한 기업 아냐? 알바를 막 그런 식으로 해고해도 되는 거야? 따져야지!" 흥분하며 열을 올리는 제게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일개 알바인 내가 뭘 할 수 있겠냐. 판이 커지면 나만 손해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도 민폐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개 알바"라서 힘을 쓸 수 없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요. 알바 노동자인 저도 사실은 무섭습니다. 다른 자리도 없는데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까요. 이처럼 코로나19라는 재난은 저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의 생계와 건강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하지만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죠. 국제사회 기준에서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에요.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인 만큼, 노동자에 관한 담론은 더욱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엪지와 함께 지적 투쟁의 여정을 떠나볼까요?🔥
작년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냉난방 시설은 물론, 부엌과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비닐하우스에서 살아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노의 물결이 일었는데요. 24일 노동부에서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할 경우 고용허가를 불허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후처리가 아닌 사전대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요.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거죠.
이러한 노동자의 건강권 위협은 코로나19 이후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어요. 그뿐일까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이후, 노동자들은 비자발적인 해고로 인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여러분들이 노동자이기도 할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코로나19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안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EFG ISSUE : 코로나19와 노동자
코로나19가 노동자에게 미친 영향은 크게 건강권과 생계보장에 대한 위협인데요. 열린정책에 따르면 2020년 6월 기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상용 노동자가 0.8% 감소하는 동안 임시·일용직은 2.2%, 기타 종사자는 4.1% 감소했다고 해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계약직과 간접 고용 노동자, 프리랜서와 비경제활동 중인 청년을 고려하면 실업난은 더욱 심각하죠.
👤 집단감염에 가려진 노동 환경
반대로 일이 폭증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비대면 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으로 배달 및 물류 서비스와 콜센터 노동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상대적으로 고용안정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처우 개선이 시급한 이유는, 폭증한 노동 강도와 더불어 작업 환경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해요.
실제로 지난 3월, 구로구의 어느 보험사 콜센터에서 169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큰 이슈가 됐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콜센터 노동자들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주변의 차가운 시선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받았는데요. 특히 콜센터 내부는 1m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붙어 앉는 밀폐형 구조이기 때문에, 집단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 전까지 지침만 내렸을 뿐, 재택근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유는 다름 아닌 ‘효율적인 직원 감시'를 위해서였다고..😨 이에 대해 노동계는 단순히 사후처리의 태도로 임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콜센터 노동자에게 장비를 지급하고 최소 근무 공간을 정하는 등 세부 산업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안전보건 대책이 없는 건 콜센터뿐만이 아니에요. 여러 지역과 장소를 거쳐 일하는 이동노동자에 대한 감염병 예방조치도 뒤늦게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죠. 정해진 물량을 몇 회 이상 제때 배달하지 못하면 계약이 해지되는 현실에서, 과연 배달 및 택배 노동자들이 업무를 중단하고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있을까요?🧐
☑️ EFG PLUS+
중소기업의 재택근무는 대기업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에요. 작년 8월, 사람인에서 34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는 대기업은 57%, 중소기업은 30%였는데요. 재택근무 시스템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소규모 회사도 많았다고 해요.
🧐 진짜 문제가 뭐야?
노동계는 본질적인 문제로 '원청 - 하도급 구조'를 주장해요. '위험의 외주화'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법의 사각지대를 틈 타 대기업은 도급업체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면서, 정작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요. 최근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LG 트윈타워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죠.
🏢(원청업체) : “도급노동자는 도급업체와 계약을 맺은 거니까 우리 책임은 아니지~"
☑️ EFG PLUS+
하청이 일본식 한자어인 것을 고려해 최근에는 '하도급'이나 '밑도급'으로, 하청업체는 '협력업체', ‘도급업체'로 단어가 변하는 추세예요.
🔥 알바는 노동자도 아니여?!
‘위험의 외주화'는 단지 콜센터와 이동 노동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저와 같은 알바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문제죠. 도서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닌가>에 따르면, 한국형 프랜차이즈에서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법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어요. 본사가 근로기준법 위반과 노동자의 안전, 근로 조건에 관한 모든 책임을 점주에게 넘기거든요. 프랜차이즈 알바노동자는 “어서오세요 00입니다.”라며 본사를 언급하지만, 본사는 그 노동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거죠.
“편의점 점장은 그날의 매출액 전부를 본사에 송금한 뒤 다음 달에 한꺼번에 정산해서 본사로부터 지급받는다. 노동자에 대해선 책임을 회피하지만 매출만큼은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 박정훈,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닌가>, 93p
설상가상 코로나19 이후 취업난은 물론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았던 아르바이트마저 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매달 18만 - 20만 명에 이르는 감소폭을 보였다고 해요.
이엪지에서도 SNS를 통해 구독자 및 인친 분들의 경험을 여쭈어 봤는데요. “코로나19 이후로 알바를 하거나 구하면서 부당함을 느낀 적이 있다"는 물음에 YES라고 답한 분이 13명, (87%), NO라고 답한 분이 2명(13%)이었어요. 구체적인 경험담을 나누어 주신 분들도 계셨죠.
💬”권고사직에 취업난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습니다😔”
💬 “수습 1개월 차였는데 2월에 코로나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바로 해고당했습니다😓 수습이어서 사전 통지 안 해도 된다며, 당일에 일 다 마치고 알려줘서 참.. 속상했던 기억이 있네요.”
💬 “마음대로 시간을 변경하거나 줄이더라고요😰 코로나로 알바 인원을 자꾸 줄여서 마감도 혼자 하고 너무 힘들어요ㅠㅠ”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알바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있어요. “알바 따위가 감히..!”라는 말에는 뿌리 깊은 노동자 혐오가 깔려 있죠. 능력이 곧 돈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알바노동자의 권리는 논의의 자격조차 되지 못하고 있어요. 소위 ‘정상적인'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근로기준법 위반과 갑질을 당해도 되는 걸까요? 능력이 없어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면, 그 사회를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 돈>>>>>(장벽)>>>>>>생명?
지금까지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계보장권 침해 사례를 살펴봤는데요. 노동계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꼽고 있어요. 이 법이 중요한 이유는 실질적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생명 경시'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거든요.
위에서 말했던 원청 - 하도급 구조가 가진 근본적 문제가 뭐냐면, 노동자의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거예요. 대기업에서는 저렴한 가격을 찾아 도급업체를 선정하기 때문에, 도급업체에서는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또 다른 재하도급 업체를 찾거나 직원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요. 그렇게 원청 - 하도급 - 재하도급 - …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지다 보면, 원청업체의 책임을 묻기가 법적으로 어려워지는 거죠. 소위 '꼬리 자르기식 처벌'이 이뤄지는 거예요.
노동계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책임의 소지를 명확하게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최근 본회의가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알맹이만 쏙 빠진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어요. 실질적 책임자를 물을 수 있는 조항은 아예 삭제됐고, 처벌 수위는 오히려 대폭 완화했거든요.
가장 큰 문제는 전체 사업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건데요.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자 중,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거든요. 노동계에서는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늘어나는 게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고 있어요.
💪 함께 싸워요!
사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와 진짜 막막하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다루고 싶은 이슈가 너무나도 많은데 분량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 다루진 못했지만 돌봄노동자와 병원노동자,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도 무척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또 한국에서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하거나 가입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죠.
사실 부끄러움도 많이 느꼈어요. 현장에 나가본 적도 없으면서 내가 이런 걸 다뤄도 되는 건가, 겉만 번지르르한 글이라고 느끼시면 어쩌나.. 싶었어요. 그만큼 현장에 나가고 싶다는 열망도 강해졌는데요. 혹 현장에 계시거나 관련 단체를 아는 구독자 분이 계시다면, efgvillage@gmail.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싸워요!
마지막으로 오늘 뉴스레터는 지금도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을 의료진 분들께 감사와 연대를 표하며 마무리하고 싶어요.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와 더불어 의료인력과 병상이 턱없이 부족한 현재,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사기 저하와 박탈감을 겪고 있다고 해요. 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에겐 응원에서 나아가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국민 청원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려요🙏🏻
👍🏻 이엪지가 추천해요
🎥 [다큐]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냉난방 안 되고, 샤워실 없고 전기 안 나오고 따뜻한 물도 안 나오는데 집세로 월 30만 원을 낸다고요?”
“네"
“한 방에 3명이면 총 90만 원이네요?”
“그쵸"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 조건이자 권리에는 주거권이 빠질 수 없는데요. 하지만 한국에서 근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중 대다수가 주거권을 박탈당하고 있어요. 고용노동부의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이 엉성하게 돼 있어, 사업주는 아무리 열악한 주거 시설을 제공해도 월세를 받을 수 있거든요. 다큐멘터리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을 진단하며 고용주의 노동 착취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 노동자가 계속 죽는 기업이라면 그 기업은 망해야 한다
“은영은 문득 크레인 사고 뉴스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되짚어 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크고 무거운 기계가 중심을 잃고 부러지고 휘어지고 떨어뜨리고 덮치는 일이 흔하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씨리얼의 영상은 늘 옳지만 특히 이 영상이 와닿았던 이유는, 영상에 달린 댓글 때문이었어요.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계속해서 증가하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질 않고 있으니까요. 더 튼튼한 크레인과 안전망을 설치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하는 이유는, 벌금을 내는 게 저렴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죽어도 기업이 내는 벌금은 돈은 단돈 400만 원이라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프랜차이즈에서 알바를 하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일을 가지 않기 시작했어요. "요즘 왜 일 안 나가?"라고 물었더니, "오지 말래"라고 답하더라고요. "직원만 일하기로 해서 알바는 안 나와도 된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어서 저도 모르게 따지듯 물어봤어요. "아니 나름 유명한 기업 아냐? 알바를 막 그런 식으로 해고해도 되는 거야? 따져야지!" 흥분하며 열을 올리는 제게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일개 알바인 내가 뭘 할 수 있겠냐. 판이 커지면 나만 손해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도 민폐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개 알바"라서 힘을 쓸 수 없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요. 알바 노동자인 저도 사실은 무섭습니다. 다른 자리도 없는데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까요. 이처럼 코로나19라는 재난은 저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의 생계와 건강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하지만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죠. 국제사회 기준에서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에요.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인 만큼, 노동자에 관한 담론은 더욱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엪지와 함께 지적 투쟁의 여정을 떠나볼까요?🔥
- 올리브 드림 -
😡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다큐영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스틸컷
작년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냉난방 시설은 물론, 부엌과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비닐하우스에서 살아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노의 물결이 일었는데요. 24일 노동부에서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할 경우 고용허가를 불허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후처리가 아닌 사전대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요.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거죠.
이러한 노동자의 건강권 위협은 코로나19 이후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어요. 그뿐일까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이후, 노동자들은 비자발적인 해고로 인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여러분들이 노동자이기도 할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코로나19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안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EFG ISSUE : 코로나19와 노동자
코로나19가 노동자에게 미친 영향은 크게 건강권과 생계보장에 대한 위협인데요. 열린정책에 따르면 2020년 6월 기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상용 노동자가 0.8% 감소하는 동안 임시·일용직은 2.2%, 기타 종사자는 4.1% 감소했다고 해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계약직과 간접 고용 노동자, 프리랜서와 비경제활동 중인 청년을 고려하면 실업난은 더욱 심각하죠.
👤 집단감염에 가려진 노동 환경
반대로 일이 폭증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비대면 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으로 배달 및 물류 서비스와 콜센터 노동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상대적으로 고용안정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처우 개선이 시급한 이유는, 폭증한 노동 강도와 더불어 작업 환경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해요.
사진 : Rolf Dietrich Brecher from Germany
실제로 지난 3월, 구로구의 어느 보험사 콜센터에서 169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큰 이슈가 됐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콜센터 노동자들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주변의 차가운 시선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받았는데요. 특히 콜센터 내부는 1m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붙어 앉는 밀폐형 구조이기 때문에, 집단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 전까지 지침만 내렸을 뿐, 재택근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유는 다름 아닌 ‘효율적인 직원 감시'를 위해서였다고..😨 이에 대해 노동계는 단순히 사후처리의 태도로 임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콜센터 노동자에게 장비를 지급하고 최소 근무 공간을 정하는 등 세부 산업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안전보건 대책이 없는 건 콜센터뿐만이 아니에요. 여러 지역과 장소를 거쳐 일하는 이동노동자에 대한 감염병 예방조치도 뒤늦게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죠. 정해진 물량을 몇 회 이상 제때 배달하지 못하면 계약이 해지되는 현실에서, 과연 배달 및 택배 노동자들이 업무를 중단하고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있을까요?🧐
☑️ EFG PLUS+
중소기업의 재택근무는 대기업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에요. 작년 8월, 사람인에서 34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는 대기업은 57%, 중소기업은 30%였는데요. 재택근무 시스템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소규모 회사도 많았다고 해요.
🧐 진짜 문제가 뭐야?
노동계는 본질적인 문제로 '원청 - 하도급 구조'를 주장해요. '위험의 외주화'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법의 사각지대를 틈 타 대기업은 도급업체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면서, 정작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요. 최근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LG 트윈타워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죠.
🏢(원청업체) : “도급노동자는 도급업체와 계약을 맺은 거니까 우리 책임은 아니지~"
🔥 알바는 노동자도 아니여?!
‘위험의 외주화'는 단지 콜센터와 이동 노동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저와 같은 알바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문제죠. 도서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닌가>에 따르면, 한국형 프랜차이즈에서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법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어요. 본사가 근로기준법 위반과 노동자의 안전, 근로 조건에 관한 모든 책임을 점주에게 넘기거든요. 프랜차이즈 알바노동자는 “어서오세요 00입니다.”라며 본사를 언급하지만, 본사는 그 노동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거죠.
“편의점 점장은 그날의 매출액 전부를 본사에 송금한 뒤 다음 달에 한꺼번에 정산해서 본사로부터 지급받는다. 노동자에 대해선 책임을 회피하지만 매출만큼은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 박정훈,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닌가>, 93p
설상가상 코로나19 이후 취업난은 물론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았던 아르바이트마저 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매달 18만 - 20만 명에 이르는 감소폭을 보였다고 해요.
이엪지에서도 SNS를 통해 구독자 및 인친 분들의 경험을 여쭈어 봤는데요. “코로나19 이후로 알바를 하거나 구하면서 부당함을 느낀 적이 있다"는 물음에 YES라고 답한 분이 13명, (87%), NO라고 답한 분이 2명(13%)이었어요. 구체적인 경험담을 나누어 주신 분들도 계셨죠.
💬”권고사직에 취업난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습니다😔”
💬 “수습 1개월 차였는데 2월에 코로나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바로 해고당했습니다😓 수습이어서 사전 통지 안 해도 된다며, 당일에 일 다 마치고 알려줘서 참.. 속상했던 기억이 있네요.”
💬 “마음대로 시간을 변경하거나 줄이더라고요😰 코로나로 알바 인원을 자꾸 줄여서 마감도 혼자 하고 너무 힘들어요ㅠㅠ”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알바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있어요. “알바 따위가 감히..!”라는 말에는 뿌리 깊은 노동자 혐오가 깔려 있죠. 능력이 곧 돈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알바노동자의 권리는 논의의 자격조차 되지 못하고 있어요. 소위 ‘정상적인'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근로기준법 위반과 갑질을 당해도 되는 걸까요? 능력이 없어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면, 그 사회를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 돈>>>>>(장벽)>>>>>>생명?
지금까지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계보장권 침해 사례를 살펴봤는데요. 노동계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꼽고 있어요. 이 법이 중요한 이유는 실질적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생명 경시'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거든요.
위에서 말했던 원청 - 하도급 구조가 가진 근본적 문제가 뭐냐면, 노동자의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거예요. 대기업에서는 저렴한 가격을 찾아 도급업체를 선정하기 때문에, 도급업체에서는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또 다른 재하도급 업체를 찾거나 직원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요. 그렇게 원청 - 하도급 - 재하도급 - …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지다 보면, 원청업체의 책임을 묻기가 법적으로 어려워지는 거죠. 소위 '꼬리 자르기식 처벌'이 이뤄지는 거예요.
노동계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책임의 소지를 명확하게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최근 본회의가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알맹이만 쏙 빠진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어요. 실질적 책임자를 물을 수 있는 조항은 아예 삭제됐고, 처벌 수위는 오히려 대폭 완화했거든요.
가장 큰 문제는 전체 사업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건데요.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자 중,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거든요. 노동계에서는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늘어나는 게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고 있어요.
💪 함께 싸워요!
사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와 진짜 막막하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다루고 싶은 이슈가 너무나도 많은데 분량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 다루진 못했지만 돌봄노동자와 병원노동자,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도 무척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또 한국에서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하거나 가입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죠.
사실 부끄러움도 많이 느꼈어요. 현장에 나가본 적도 없으면서 내가 이런 걸 다뤄도 되는 건가, 겉만 번지르르한 글이라고 느끼시면 어쩌나.. 싶었어요. 그만큼 현장에 나가고 싶다는 열망도 강해졌는데요. 혹 현장에 계시거나 관련 단체를 아는 구독자 분이 계시다면, efgvillage@gmail.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싸워요!
마지막으로 오늘 뉴스레터는 지금도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을 의료진 분들께 감사와 연대를 표하며 마무리하고 싶어요.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와 더불어 의료인력과 병상이 턱없이 부족한 현재,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사기 저하와 박탈감을 겪고 있다고 해요. 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에겐 응원에서 나아가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국민 청원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려요🙏🏻
👍🏻 이엪지가 추천해요
🎥 [다큐]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냉난방 안 되고, 샤워실 없고 전기 안 나오고 따뜻한 물도 안 나오는데 집세로 월 30만 원을 낸다고요?”
“네"
“한 방에 3명이면 총 90만 원이네요?”
“그쵸"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 조건이자 권리에는 주거권이 빠질 수 없는데요. 하지만 한국에서 근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중 대다수가 주거권을 박탈당하고 있어요. 고용노동부의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이 엉성하게 돼 있어, 사업주는 아무리 열악한 주거 시설을 제공해도 월세를 받을 수 있거든요. 다큐멘터리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을 진단하며 고용주의 노동 착취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 노동자가 계속 죽는 기업이라면 그 기업은 망해야 한다
“은영은 문득 크레인 사고 뉴스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되짚어 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크고 무거운 기계가 중심을 잃고 부러지고 휘어지고 떨어뜨리고 덮치는 일이 흔하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씨리얼의 영상은 늘 옳지만 특히 이 영상이 와닿았던 이유는, 영상에 달린 댓글 때문이었어요.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계속해서 증가하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질 않고 있으니까요. 더 튼튼한 크레인과 안전망을 설치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하는 이유는, 벌금을 내는 게 저렴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죽어도 기업이 내는 벌금은 돈은 단돈 400만 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