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폭풍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아시나요? 1998년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로맨스 드라마예요. 무척 좋아하는 드라마라서 매주 챙겨보고 있었는데, 오늘 이야기할 ‘스포츠 폭력'과 연관되는 장면들을 발견했지 뭐예요? 그래서 오늘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영화 <4등>을 리뷰하면서 ‘스포츠 폭력'을 다루려고 해요.
🎬 요즘 핫한 드라마 속 스포츠 폭력
사진 : ⓒ tvN, 화앤담픽쳐스 / tvN drama
위 사진은 극 중 펜싱 국가대표 선수인 고유림이 학교 선배에게 기합을 당하는 장면이에요. 단지 야간 훈련을 했다는 이유로 선배는 소리를 지르고, 펜싱 칼로 고유림 선수를 찌르는 등 신체 폭력을 가했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어째서 폭력의 이유가 되는 걸까요?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 중, 고등학생 선수 5만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8천여 명(15%)이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어요. 언어/신체/성폭력을 모두 합치면 무려 2만여 명, 약 35%죠. 스포츠계의 폐쇄성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문제는 폭력의 대물림이에요. 학교와 운동부에서 폭력을 경험하면, 추후 지도자가 됐을 때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러한 폭력의 대물림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4등>입니다. 과거 아시아 신기록까지 달성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광수’는, 코치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대표를 포기하는데요. 폭력을 혐오하던 ‘광수’지만 세월이 흘러 자신 또한 매를 휘두르는 코치가 됩니다. 폭력을 혐오하던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된다는 건, 시간이 흘러도 시스템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겠죠. 😔
💣 스포츠 폭력은 세계적인 문제
영상 : ⓒ SBS / SBS 뉴스
스포츠 폭력 하면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고 최숙현 선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는 팀 내 가혹행위와 폭력에 시달리다 지난해 6월,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요. 동료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감독과 주장 선수, 팀 닥터가 최 선수를 비롯한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에게 심리적, 신체적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요. 훈련이라는 이유로 맞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자 ‘문화'였기에, 폭행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폭력이 일종의 문화로 굳어진 건 한국만의 일이 아니에요. 일본에서는 ‘타이바츠(Taibutsu)', 미국에서는 ‘헤이징(Hazing)’이라는 문화가 스포츠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타이바츠는 오랜 전통을 가진 일본의 스포츠 체벌 문화인데요. 선수의 지원과 인격 형성에 있어 필수 요소로 여겨져 코치도, 부모도, 심지어 선수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해요.
미국의 ‘헤이징’은 일종의 환영식이나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괴롭힘’인데요. 미국 내 여러 주에서는 헤이징이 금지되어 있지만, 일부 대학과 특히 스포츠계에서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NCAA에 따르면, 학생 운동선수의 74%가 대학 재학 중에 헤이징을 경험한다고 해요.
⚙️ 폭력의 악순환을 만드는 3가지
영상 : ⓒ 해럴드스토리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교육을 진행해왔거든요. 그런데도 여전히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
2020년 개정 전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에는 "체육을 통해 국위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어요. 이처럼 한국의 스포츠는 국익을 위해 국가 주도로 이뤄져 왔기에, 승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성을 갖게 됐어요. 메달을 비롯한 성적, 성취가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는 거죠. 지도자가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맡고 있는 선수의 성적에 따라 급여가 결정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고요.
사실 스포츠는 팀의 승리와 선수 개인의 존엄성 사이에서 늘 가치 대립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IMF 이후 한국 사회에 성과주의가 만연해지면서, 체육계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죠.
사진 : ⓒ tvN, 화앤담픽쳐스 / tvN drama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IMF 당시 한국 체육계의 성과주의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요. 펜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고유림 선수는 나희도 선수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금메달을 빼앗길까 봐 초조함을 느끼는데요. 설상가상 코치는 그런 고유림 선수에게 “우리가 너한테 얼마나 투자했는데!"라고 말하며 압박하죠. 무명 선수가 성장하는 것보다 엘리트 선수가 계속해서 성공하는 모습을 원한다는 점이 꽤 소름인데요. 이렇게 되면 선수한테는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 아닌가요? 😳
🗯 폭력이 당연시되는 결정적 이유
사진 : ⓒ 국가인권위원회, 정지우필름 /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스포츠계에 만연한 엘리트주의는 영화 <4등>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매 대회마다 4등을 하던 준호는 새로운 코치 ‘광수’를 만나고, 성적이 저조할 때마다 매를 휘두르는 코치가 두려워 목숨을 걸고 수영을 하게 됩니다. 준호의 엄마는 아들이 맞는 걸 알고 있지만, 코치가 엘리트 선수였기에 그의 행동에 이유가 있다고 여겨 말리지 않죠. 결국 준호는 대회에서 2등을 하는 ‘성과'를 내게 되는데요. 한껏 들뜬 준호에게 동생은 이렇게 말해요.
“형, 예전엔 안 맞아서 맨날 4등 하던 거야?”
사실 코치의 폭력 이전에도 준호는 꾸준히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압박감, 부모의 언어폭력 등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나도 무거웠을 거예요. 그런 상황 속에서 매를 맞는 것은 어쩌면 준호에게 매가 아니라 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준호는 멍 투성이인 자신의 몸을 보고 놀라는 아빠에게 "내가 정신을 안 차리고 하니까 이렇게 된 거야" 라고 말하죠.
준호를 비롯해 모든 인물이 폭력을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한 이유는 결국, '엘리트 체육'에 있습니다. 실력 있는 자의 말이 곧 법인 엘리트주의는, 세상의 많은 '준호'들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합숙 훈련
사진 : ⓒ tvN, 화앤담픽쳐스 / tvN drama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면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어요. 국가대표인 고유림 선수와 나희도 선수가 대회 시즌이 되면 선수촌에서 살다시피 하고, 아주 가끔 학교에 나오는 장면인데요. 다른 나라도 이렇게 하나 싶어 알아보니, 한국의 태릉 선수촌처럼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집단으로 합숙 훈련을 하는 나라는 드물다고 해요. 그렇다면 한국은 왜 합숙 훈련을 하는 걸까요? 🧐
대학 입학 특기자 제도가 생긴 1972년 이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수록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되면서 합숙 훈련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합숙 훈련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이고 협동의식을 키우기도 하는데요. 기숙사가 폭력의 근원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해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합숙 경험이 있는 경우 학교 폭력 피해자가 10% 정도 더 높았는데요. 정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CCTV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세웠지만, 실태 조사 결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높은 사례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합숙을 금지시켜도 편법을 써서 합숙 훈련을 하는 경우가 파다하기도 하고요. 😰
사진 : ⓒ 국가인권위원회, 정지우필름 /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 폭력은 답습된다
저는 이번 글을 쓰면서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는데요. 막 입학했을 당시 선배들의 은근한 강요로 술을 마시고 FM 구호를 5번도 넘게 외쳤던 기억이 나요. 부끄러운 사실은 그렇게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그다음 해에 제가 선배가 되어서 그 문화를 없애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저 나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무리에서 빠져나가려고만 했죠. 다행히 어느 학생이 언론에 제보해 학교의 강요 문화는 사라졌지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던 당시의 저를 떠올리면 분위기라는 게 참 무섭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4등>의 후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준호가 수영을 그만두고 나서 자신의 수경을 몰래 쓴 동생을 보고는,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똑같이 매를 휘두르거든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저의 대학교 시절이 떠올라 부끄럽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쁜 것은 빨리 배우고 좋은 것은 퍼지기 어려운 세상이라니, 조금 씁쓸한데요. 그럴수록 우리, 서로를 위한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나누기로 해요. 이 틈을 타 제가 좋아하는 밈을 따라 해 봅니다. 아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보태주시고, 밀어주시고, 배려해주시고, 많이 웃어주시고, 두루두루 살펴주시고… (이하 생략)
영상 : ⓒ tvN, 화앤담픽쳐스 / tvN drama
👀 이 자리를 빌려 작가님께 감사드리고..좋아하고..사라ㅇ..
요즘 폭풍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아시나요? 1998년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로맨스 드라마예요. 무척 좋아하는 드라마라서 매주 챙겨보고 있었는데, 오늘 이야기할 ‘스포츠 폭력'과 연관되는 장면들을 발견했지 뭐예요? 그래서 오늘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영화 <4등>을 리뷰하면서 ‘스포츠 폭력'을 다루려고 해요.
🎬 요즘 핫한 드라마 속 스포츠 폭력
사진 : ⓒ tvN, 화앤담픽쳐스 / tvN drama
위 사진은 극 중 펜싱 국가대표 선수인 고유림이 학교 선배에게 기합을 당하는 장면이에요. 단지 야간 훈련을 했다는 이유로 선배는 소리를 지르고, 펜싱 칼로 고유림 선수를 찌르는 등 신체 폭력을 가했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어째서 폭력의 이유가 되는 걸까요?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 중, 고등학생 선수 5만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8천여 명(15%)이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어요. 언어/신체/성폭력을 모두 합치면 무려 2만여 명, 약 35%죠. 스포츠계의 폐쇄성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문제는 폭력의 대물림이에요. 학교와 운동부에서 폭력을 경험하면, 추후 지도자가 됐을 때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러한 폭력의 대물림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4등>입니다. 과거 아시아 신기록까지 달성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광수’는, 코치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대표를 포기하는데요. 폭력을 혐오하던 ‘광수’지만 세월이 흘러 자신 또한 매를 휘두르는 코치가 됩니다. 폭력을 혐오하던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된다는 건, 시간이 흘러도 시스템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겠죠. 😔
💣 스포츠 폭력은 세계적인 문제
영상 : ⓒ SBS / SBS 뉴스
스포츠 폭력 하면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고 최숙현 선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는 팀 내 가혹행위와 폭력에 시달리다 지난해 6월,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요. 동료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감독과 주장 선수, 팀 닥터가 최 선수를 비롯한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에게 심리적, 신체적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요. 훈련이라는 이유로 맞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자 ‘문화'였기에, 폭행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폭력이 일종의 문화로 굳어진 건 한국만의 일이 아니에요. 일본에서는 ‘타이바츠(Taibutsu)', 미국에서는 ‘헤이징(Hazing)’이라는 문화가 스포츠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타이바츠는 오랜 전통을 가진 일본의 스포츠 체벌 문화인데요. 선수의 지원과 인격 형성에 있어 필수 요소로 여겨져 코치도, 부모도, 심지어 선수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해요.
미국의 ‘헤이징’은 일종의 환영식이나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괴롭힘’인데요. 미국 내 여러 주에서는 헤이징이 금지되어 있지만, 일부 대학과 특히 스포츠계에서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NCAA에 따르면, 학생 운동선수의 74%가 대학 재학 중에 헤이징을 경험한다고 해요.
⚙️ 폭력의 악순환을 만드는 3가지
영상 : ⓒ 해럴드스토리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교육을 진행해왔거든요. 그런데도 여전히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
2020년 개정 전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에는 "체육을 통해 국위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어요. 이처럼 한국의 스포츠는 국익을 위해 국가 주도로 이뤄져 왔기에, 승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성을 갖게 됐어요. 메달을 비롯한 성적, 성취가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는 거죠. 지도자가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맡고 있는 선수의 성적에 따라 급여가 결정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고요.
사실 스포츠는 팀의 승리와 선수 개인의 존엄성 사이에서 늘 가치 대립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IMF 이후 한국 사회에 성과주의가 만연해지면서, 체육계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죠.
사진 : ⓒ tvN, 화앤담픽쳐스 / tvN drama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IMF 당시 한국 체육계의 성과주의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요. 펜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고유림 선수는 나희도 선수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금메달을 빼앗길까 봐 초조함을 느끼는데요. 설상가상 코치는 그런 고유림 선수에게 “우리가 너한테 얼마나 투자했는데!"라고 말하며 압박하죠. 무명 선수가 성장하는 것보다 엘리트 선수가 계속해서 성공하는 모습을 원한다는 점이 꽤 소름인데요. 이렇게 되면 선수한테는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 아닌가요? 😳
🗯 폭력이 당연시되는 결정적 이유
사진 : ⓒ 국가인권위원회, 정지우필름 /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스포츠계에 만연한 엘리트주의는 영화 <4등>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매 대회마다 4등을 하던 준호는 새로운 코치 ‘광수’를 만나고, 성적이 저조할 때마다 매를 휘두르는 코치가 두려워 목숨을 걸고 수영을 하게 됩니다. 준호의 엄마는 아들이 맞는 걸 알고 있지만, 코치가 엘리트 선수였기에 그의 행동에 이유가 있다고 여겨 말리지 않죠. 결국 준호는 대회에서 2등을 하는 ‘성과'를 내게 되는데요. 한껏 들뜬 준호에게 동생은 이렇게 말해요.
“형, 예전엔 안 맞아서 맨날 4등 하던 거야?”
사실 코치의 폭력 이전에도 준호는 꾸준히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압박감, 부모의 언어폭력 등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나도 무거웠을 거예요. 그런 상황 속에서 매를 맞는 것은 어쩌면 준호에게 매가 아니라 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준호는 멍 투성이인 자신의 몸을 보고 놀라는 아빠에게 "내가 정신을 안 차리고 하니까 이렇게 된 거야" 라고 말하죠.
준호를 비롯해 모든 인물이 폭력을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한 이유는 결국, '엘리트 체육'에 있습니다. 실력 있는 자의 말이 곧 법인 엘리트주의는, 세상의 많은 '준호'들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합숙 훈련
사진 : ⓒ tvN, 화앤담픽쳐스 / tvN drama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면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어요. 국가대표인 고유림 선수와 나희도 선수가 대회 시즌이 되면 선수촌에서 살다시피 하고, 아주 가끔 학교에 나오는 장면인데요. 다른 나라도 이렇게 하나 싶어 알아보니, 한국의 태릉 선수촌처럼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집단으로 합숙 훈련을 하는 나라는 드물다고 해요. 그렇다면 한국은 왜 합숙 훈련을 하는 걸까요? 🧐
대학 입학 특기자 제도가 생긴 1972년 이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수록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되면서 합숙 훈련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합숙 훈련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이고 협동의식을 키우기도 하는데요. 기숙사가 폭력의 근원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해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합숙 경험이 있는 경우 학교 폭력 피해자가 10% 정도 더 높았는데요. 정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CCTV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세웠지만, 실태 조사 결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높은 사례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합숙을 금지시켜도 편법을 써서 합숙 훈련을 하는 경우가 파다하기도 하고요. 😰
사진 : ⓒ 국가인권위원회, 정지우필름 /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 폭력은 답습된다
저는 이번 글을 쓰면서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는데요. 막 입학했을 당시 선배들의 은근한 강요로 술을 마시고 FM 구호를 5번도 넘게 외쳤던 기억이 나요. 부끄러운 사실은 그렇게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그다음 해에 제가 선배가 되어서 그 문화를 없애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저 나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무리에서 빠져나가려고만 했죠. 다행히 어느 학생이 언론에 제보해 학교의 강요 문화는 사라졌지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던 당시의 저를 떠올리면 분위기라는 게 참 무섭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4등>의 후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준호가 수영을 그만두고 나서 자신의 수경을 몰래 쓴 동생을 보고는,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똑같이 매를 휘두르거든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저의 대학교 시절이 떠올라 부끄럽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쁜 것은 빨리 배우고 좋은 것은 퍼지기 어려운 세상이라니, 조금 씁쓸한데요. 그럴수록 우리, 서로를 위한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나누기로 해요. 이 틈을 타 제가 좋아하는 밈을 따라 해 봅니다. 아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보태주시고, 밀어주시고, 배려해주시고, 많이 웃어주시고, 두루두루 살펴주시고…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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