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언니 혜영에게는 한 살 어린 막내 동생 혜정이 있다. 동생은 단지 중증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13살이 되었을 때 장애인수용시설로 보내져, 30살이 되도록 그곳에 살아야 했다. 혜영은 그런 삶을 동생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동생을 다시 사회로 데리고 나와 18년 만에 둘이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혜영은, 혜정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힘든 순간들이 찾아왔다.
🟠브랜디 :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장애인 차별이나, 사회 또는 시설의 구조적 문제가 중심 서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그냥 동생 혜정과 살아가는 일상적인 모습이 보여서 오히려 신선하고 좋았어. 좌충우돌 우당탕탕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았달까?🙂 또 영화를 보고 나니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어. 사람들은 혜정이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할 때,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했다고 해. 혜정은 평생 어른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혜정은 이제 탈시설을 한 사회인이고, '어른'으로서 시설 밖의 세상과 공존해나가야 해. 그 과정을 담은 영화의 제목으로 적절했던 것 같아.
🟢올리브 : 나도 그래서 좋았어. 보통 사회문제와 관련된 다큐를 보면 엄청 문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잖아. 물론 그런 시각도 필요하지만, 구조적 문제를 짚는 것에만 그치면 오히려 '안타까운 남일'로 치부되고 타자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나는 장애가 한 가정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식으로 표현되는 건 별로야. 장애를 꼭 절망적으로 봐야 할까? 살다 보면 질병으로든 외상으로든 장애는 찾아오기 마련이잖아. 그런 점에서 <어른이 되면>은 당사자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줘서 좋았어. 그렇다고 문제를 안 짚은 것도 아냐. 다뤄야 할 것은 다루되, 그 문제가 장애 때문이 아니라 비장애중심적인 사회 때문이라는 걸 잘 보여줬지.
🎇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사는 뭐였어?
영상 : ⓒ 장혜영
🎶 혜정, 음악 수업을 듣다. 그런데...
🟢올리브 : 인서의 리드로 혜정이 음악 수업을 받는 장면이 있었잖아. 노래 한 소절 부르는 것도 시간이 엄청 걸리고 진도가 잘 안 나갔었거든. 혜정 스스로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마음처럼 잘 안 따라줘서 답답해하더라구. 근데 그 와중에 인서는 엄청 차분한 거야. 성격이 급한 나라면 과연 인서처럼 차분하게 혜정을 설득하면서 수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싶었어.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어. 저마다의 '속도'를 배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인서의 속도, 혜정의 속도, 올리브의 속도 전부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잖아.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해야 한다는 비장애중심적 시선으로 속도를 규정하고 있지. 나는 이게 장애인을 비롯한 많은 존재와의 소통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사람도 세상도 너무 빨라지면 그만큼 못 보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저마다의 속도를 존중하고 또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서로의 속도를 알아차리고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브랜디 : 맞아. '저마다의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가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이야.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겠지. 나를 포함한 많은 비장애인들이 공존을 위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어서 겪었으면 좋겠어.
📸 스티커 사진이 찍고 싶은 혜정에게 나는,
(스티커 사진 기계가 없는 곳에서 스티커 사진을 찍고 싶다고 울며 화를 내는 혜정과 난감한 그의 친구 은경,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웃으며 스티커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이 담긴 장면입니다.)
🟠브랜디 : 나는 살면서 주변에 장애인을 둔 적이 거의 없어. 그래서 만약 내가 스티커 사진을 찍고 싶다고 울며 떼쓰는 혜정의 앞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어. 혜정이 나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고 중간중간 일시정지하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해봤는데, 너무 어렵더라고.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자막 없이는 말을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대화 자체가 힘들었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소통이 쉽지 않다는 걸 와닿게 해준 장면이야.
🟢올리브 :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소통이 쉽지 않은 이유는, 서로의 일상을 보는 게 쉽지 않아서인 것 같아. 나만 해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있고, 공간이나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장애인이 일상의 공간으로 나올 수 있는 법과 제도적 변화가 아직 안 이뤄졌다는 거겠지.
예전에 서강대학교 대학원 신문에서 김도현 활동가의 인터뷰를 봤는데,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어서 인용할게.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비장애인들도 종종 그런 것처럼) 장애인도 불금이나 주말에 지하철 막차에서 오바이트하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애인의 일상이 비장애인의 일상과 섞여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걸 계속 노출시키는 것이, 인식 개선에서 나아가 장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야. 그런 점에서 나는 스티커 사진을 찍기 전의 갈등보다, 스티커 사진을 찍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 솔직히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혜정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참 어려웠거든. 근데 혜정이 볼펜이랑 스티커로 여기저기 꾸미고, 인쇄된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완전 나 같은 거야. 깔깔대면서 웃었지. 이 장면을 계기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던 거 같아.
🎈 영화를 보고 생각나는 경험이 있어?
영상 : ⓒ EBS Clipbank
🟠브랜디 : 지금은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특수학급'에서 반장을 뽑지 않았어. 학교 내의 모든 학급에는 반장, 부반장이 있었는데, 특수학급에서는 그런 것조차 하지 않는 거지. 장애인 학생이 주체성을 가지고 학급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사실 난 특수학급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라, 일반학급 내에서의 장애인 학생의 위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돼. 일반학급에서 장애인 학생이 반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은 그저 상상 속의 일인 걸까?
또 하나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일이었어. 레크레이션을 하다가 강사분이 장애인 친구를 무대 위로 올려서 질문을 했는데, 그 친구가 대답을 잘 못 했어. 그러자 그 강사분이 소소한 농담을 던지면서 분위기를 풀려고 하셨지. 그때, 나를 포함한 주변 친구들이 술렁거렸어. '저래도 돼?' '장애인이라는 걸 모르시나 봐.' 하면서.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편견이었던 거야. 그 강사분은 그 친구를 다른 학생과 똑같이 대한 것뿐이니까.
🟢올리브 : 그런 걸 보면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건 결국 비장애중심적 시선이 아닐까 싶어. 그런데 한편으로는 고민인 게, 어디까지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까? 어디까지가 배려고, 어디부터 도 넘은 선의일까?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장애적 요소를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은 막연하게 느껴져.
나는 카페 알바를 하면서 장애인을 자주 만나거든.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가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느껴. 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땐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벗어야 하는지 판단이 안 되고, 높은 계산대 때문에 휠체어를 타신 분이 결제를 비장애인에게 부탁하는 걸 본 적도 있어. 어느 날은 가족으로 보이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란히 서서 메뉴를 보는데, 주문하려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이 팔로 막으면서 급하게 주문하더라고.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길래 그렇게 다급하게 움직이셨을까?
🔊 아쉬웠던 점이나 궁금한 점은?
영상 : ⓒ 장혜영
🤔 이건 정말 맞는 행동일까?
🟠브랜디 : 혜정이 사회성이 부족해서 사회성을 강화하는 훈련을 해나가는 과정이 담겼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혜영의 말투가 혜정을 아기처럼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 “혜정아, 이렇게 해야지. 언니 봐야지."라고 하는데, 이게 정말 장애인을 아기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난 행동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보면, 고문영이라는 캐릭터가 발달장애인인 문상태를 대하는 게 정말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것처럼 보여서 인상 깊었거든. 물론 영화엔 처음 같이 살게 된 6개월이 담긴 거고, 혜영은 전문가가 아니니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
🟢올리브 : 안 그래도 장혜영 감독이 영화 관련 인터뷰에서 이런 지점에 대해 얘기한 게 있어. 혜영 스스로도 혜정을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보는 부분이 많았다 하더라고. 브랜디가 말한 부분은 나도 생각하지 못해서 이렇게 또 하나 배웠네! 혜영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이런 부분을 의식적으로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 비건지향인으로서는,
🟠브랜디 : 나는 비건지향인이고, 이엪지를 통해 비거니즘을 더 널리 널리 알리고 싶은 사람이지만, 주변에 비건지향을 강요하거나 논비건을 욕해본 적은 없어.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미디어에 나오는 육식에 대해서는 아주 회의적이야. 육식을 전시하고 그 이면의 고통을 지움으로써 소비를 조장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육식 장면들이 편하게 느껴지진 않았어. 특히 차별과 혐오에 대한 반대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
🤔 노들야학 장면을 보고 든 2가지 생각
🟢올리브 : 혜정과 혜영이 함께 처음으로 노들야학에 간 장면이 있었는데, 혜정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걸 보고 공감했어. 편집이 되었을 순 있지만, 충분한 설명 없이 갑자기 낯선 공간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는 건 나도 쉽지 않을 것 같거든.
탈시설을 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만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당시의 혜정에겐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 어떤 걸 해볼 수 있고 무엇을 욕망할 수 있는지, 당사자의 속도로 알아가면 어땠을까 싶더라고.
한편으로는 혜영에게 노들야학이 어떤 의미였을지를 생각하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안 할 수가 없어. 서울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해야지만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당시 상황에서, 노들야학이 건넨 "일단 오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됐을까 싶더라고. 특정 조건을 맞춰야지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말이 돼?😡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남겨줘!
영상 : ⓒ 닷페이스
❓ 우리 사회는 다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 올리브 : 요즘 SNS를 보면 조금 씁쓸한 게,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경계하고 심하게는 혐오하는 게 언뜻 보여. 나는 이 갈등의 중심에 미디어가 있다고 생각해. 개개인의 차이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를 미디어가 심각하게 다루면 극단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봐.
좀 더 건강한 미디어, 다름을 존중하는 미디어는 없는 걸까? 차이를 차별로 만들지 않는 미디어가 많아졌으면 좋겠어. 그런 점에서 <어른이 되면>은 다름을 강조하기보다,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서사를 잘 보여준 미디어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 험난하고 긴 길이지만,
🟠 브랜디 : 영화 속에 삽입된 혜영의 나레이션 중 한 부분을 공유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해.
"혜정이는 온전히 우리 가족의 책임이었고, 지금도 우리 가족의 뒤에는 누구도 없다. (....) 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할까."
이상과는 달리 갈등이 가득한 현실을 잘 담은 문장이라고 생각해. 장애는 '개인의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적 문제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비장애인들의 모습이 모두 보였거든. 탈시설을 다루면서 시설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니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 같아. 혜영과 혜정의 앞으로의 일상이 궁금하고 기대가 돼.😊
#EFG REVIEW : 영화 <어른이 되면>
*보다 깊은 리뷰를 위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줄거리
영상 : ⓒ cinemaDAL
둘째 언니 혜영에게는 한 살 어린 막내 동생 혜정이 있다. 동생은 단지 중증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13살이 되었을 때 장애인수용시설로 보내져, 30살이 되도록 그곳에 살아야 했다. 혜영은 그런 삶을 동생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동생을 다시 사회로 데리고 나와 18년 만에 둘이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혜영은, 혜정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힘든 순간들이 찾아왔다.
혜영과 혜정은 결국 떨어져 살아야 할 운명일까?
그들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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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면>, 전반적으로 어땠어?
영상 : ⓒ 장혜영
🟠브랜디 :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장애인 차별이나, 사회 또는 시설의 구조적 문제가 중심 서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그냥 동생 혜정과 살아가는 일상적인 모습이 보여서 오히려 신선하고 좋았어. 좌충우돌 우당탕탕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았달까?🙂 또 영화를 보고 나니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어. 사람들은 혜정이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할 때,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했다고 해. 혜정은 평생 어른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혜정은 이제 탈시설을 한 사회인이고, '어른'으로서 시설 밖의 세상과 공존해나가야 해. 그 과정을 담은 영화의 제목으로 적절했던 것 같아.
🟢올리브 : 나도 그래서 좋았어. 보통 사회문제와 관련된 다큐를 보면 엄청 문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잖아. 물론 그런 시각도 필요하지만, 구조적 문제를 짚는 것에만 그치면 오히려 '안타까운 남일'로 치부되고 타자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나는 장애가 한 가정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식으로 표현되는 건 별로야. 장애를 꼭 절망적으로 봐야 할까? 살다 보면 질병으로든 외상으로든 장애는 찾아오기 마련이잖아. 그런 점에서 <어른이 되면>은 당사자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줘서 좋았어. 그렇다고 문제를 안 짚은 것도 아냐. 다뤄야 할 것은 다루되, 그 문제가 장애 때문이 아니라 비장애중심적인 사회 때문이라는 걸 잘 보여줬지.
🎇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사는 뭐였어?
영상 : ⓒ 장혜영
🎶 혜정, 음악 수업을 듣다. 그런데...
🟢올리브 : 인서의 리드로 혜정이 음악 수업을 받는 장면이 있었잖아. 노래 한 소절 부르는 것도 시간이 엄청 걸리고 진도가 잘 안 나갔었거든. 혜정 스스로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마음처럼 잘 안 따라줘서 답답해하더라구. 근데 그 와중에 인서는 엄청 차분한 거야. 성격이 급한 나라면 과연 인서처럼 차분하게 혜정을 설득하면서 수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싶었어.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어. 저마다의 '속도'를 배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인서의 속도, 혜정의 속도, 올리브의 속도 전부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잖아.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해야 한다는 비장애중심적 시선으로 속도를 규정하고 있지. 나는 이게 장애인을 비롯한 많은 존재와의 소통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사람도 세상도 너무 빨라지면 그만큼 못 보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저마다의 속도를 존중하고 또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서로의 속도를 알아차리고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브랜디 : 맞아. '저마다의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가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이야.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겠지. 나를 포함한 많은 비장애인들이 공존을 위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어서 겪었으면 좋겠어.
📸 스티커 사진이 찍고 싶은 혜정에게 나는,
(스티커 사진 기계가 없는 곳에서 스티커 사진을 찍고 싶다고 울며 화를 내는 혜정과 난감한 그의 친구 은경,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웃으며 스티커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이 담긴 장면입니다.)
🟠브랜디 : 나는 살면서 주변에 장애인을 둔 적이 거의 없어. 그래서 만약 내가 스티커 사진을 찍고 싶다고 울며 떼쓰는 혜정의 앞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어. 혜정이 나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고 중간중간 일시정지하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해봤는데, 너무 어렵더라고.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자막 없이는 말을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대화 자체가 힘들었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소통이 쉽지 않다는 걸 와닿게 해준 장면이야.
🟢올리브 :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소통이 쉽지 않은 이유는, 서로의 일상을 보는 게 쉽지 않아서인 것 같아. 나만 해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있고, 공간이나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장애인이 일상의 공간으로 나올 수 있는 법과 제도적 변화가 아직 안 이뤄졌다는 거겠지.
예전에 서강대학교 대학원 신문에서 김도현 활동가의 인터뷰를 봤는데,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어서 인용할게.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비장애인들도 종종 그런 것처럼) 장애인도 불금이나 주말에 지하철 막차에서 오바이트하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애인의 일상이 비장애인의 일상과 섞여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걸 계속 노출시키는 것이, 인식 개선에서 나아가 장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야. 그런 점에서 나는 스티커 사진을 찍기 전의 갈등보다, 스티커 사진을 찍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 솔직히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혜정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참 어려웠거든. 근데 혜정이 볼펜이랑 스티커로 여기저기 꾸미고, 인쇄된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완전 나 같은 거야. 깔깔대면서 웃었지. 이 장면을 계기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던 거 같아.
🎈 영화를 보고 생각나는 경험이 있어?
영상 : ⓒ EBS Clipbank
🟠브랜디 : 지금은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특수학급'에서 반장을 뽑지 않았어. 학교 내의 모든 학급에는 반장, 부반장이 있었는데, 특수학급에서는 그런 것조차 하지 않는 거지. 장애인 학생이 주체성을 가지고 학급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사실 난 특수학급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라, 일반학급 내에서의 장애인 학생의 위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돼. 일반학급에서 장애인 학생이 반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은 그저 상상 속의 일인 걸까?
또 하나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일이었어. 레크레이션을 하다가 강사분이 장애인 친구를 무대 위로 올려서 질문을 했는데, 그 친구가 대답을 잘 못 했어. 그러자 그 강사분이 소소한 농담을 던지면서 분위기를 풀려고 하셨지. 그때, 나를 포함한 주변 친구들이 술렁거렸어. '저래도 돼?' '장애인이라는 걸 모르시나 봐.' 하면서.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편견이었던 거야. 그 강사분은 그 친구를 다른 학생과 똑같이 대한 것뿐이니까.
🟢올리브 : 그런 걸 보면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건 결국 비장애중심적 시선이 아닐까 싶어. 그런데 한편으로는 고민인 게, 어디까지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까? 어디까지가 배려고, 어디부터 도 넘은 선의일까?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장애적 요소를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은 막연하게 느껴져.
나는 카페 알바를 하면서 장애인을 자주 만나거든.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가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느껴. 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땐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벗어야 하는지 판단이 안 되고, 높은 계산대 때문에 휠체어를 타신 분이 결제를 비장애인에게 부탁하는 걸 본 적도 있어. 어느 날은 가족으로 보이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란히 서서 메뉴를 보는데, 주문하려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이 팔로 막으면서 급하게 주문하더라고.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길래 그렇게 다급하게 움직이셨을까?
🔊 아쉬웠던 점이나 궁금한 점은?
영상 : ⓒ 장혜영
🤔 이건 정말 맞는 행동일까?
🟠브랜디 : 혜정이 사회성이 부족해서 사회성을 강화하는 훈련을 해나가는 과정이 담겼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혜영의 말투가 혜정을 아기처럼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 “혜정아, 이렇게 해야지. 언니 봐야지."라고 하는데, 이게 정말 장애인을 아기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난 행동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보면, 고문영이라는 캐릭터가 발달장애인인 문상태를 대하는 게 정말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것처럼 보여서 인상 깊었거든. 물론 영화엔 처음 같이 살게 된 6개월이 담긴 거고, 혜영은 전문가가 아니니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
🟢올리브 : 안 그래도 장혜영 감독이 영화 관련 인터뷰에서 이런 지점에 대해 얘기한 게 있어. 혜영 스스로도 혜정을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보는 부분이 많았다 하더라고. 브랜디가 말한 부분은 나도 생각하지 못해서 이렇게 또 하나 배웠네! 혜영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이런 부분을 의식적으로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 비건지향인으로서는,
🟠브랜디 : 나는 비건지향인이고, 이엪지를 통해 비거니즘을 더 널리 널리 알리고 싶은 사람이지만, 주변에 비건지향을 강요하거나 논비건을 욕해본 적은 없어.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미디어에 나오는 육식에 대해서는 아주 회의적이야. 육식을 전시하고 그 이면의 고통을 지움으로써 소비를 조장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육식 장면들이 편하게 느껴지진 않았어. 특히 차별과 혐오에 대한 반대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
🤔 노들야학 장면을 보고 든 2가지 생각
🟢올리브 : 혜정과 혜영이 함께 처음으로 노들야학에 간 장면이 있었는데, 혜정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걸 보고 공감했어. 편집이 되었을 순 있지만, 충분한 설명 없이 갑자기 낯선 공간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는 건 나도 쉽지 않을 것 같거든.
탈시설을 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만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당시의 혜정에겐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 어떤 걸 해볼 수 있고 무엇을 욕망할 수 있는지, 당사자의 속도로 알아가면 어땠을까 싶더라고.
한편으로는 혜영에게 노들야학이 어떤 의미였을지를 생각하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안 할 수가 없어. 서울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해야지만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당시 상황에서, 노들야학이 건넨 "일단 오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됐을까 싶더라고. 특정 조건을 맞춰야지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말이 돼?😡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남겨줘!
영상 : ⓒ 닷페이스
❓ 우리 사회는 다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 올리브 : 요즘 SNS를 보면 조금 씁쓸한 게,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경계하고 심하게는 혐오하는 게 언뜻 보여. 나는 이 갈등의 중심에 미디어가 있다고 생각해. 개개인의 차이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를 미디어가 심각하게 다루면 극단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봐.
좀 더 건강한 미디어, 다름을 존중하는 미디어는 없는 걸까? 차이를 차별로 만들지 않는 미디어가 많아졌으면 좋겠어. 그런 점에서 <어른이 되면>은 다름을 강조하기보다,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서사를 잘 보여준 미디어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 험난하고 긴 길이지만,
🟠 브랜디 : 영화 속에 삽입된 혜영의 나레이션 중 한 부분을 공유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해.
"혜정이는 온전히 우리 가족의 책임이었고, 지금도 우리 가족의 뒤에는 누구도 없다. (....) 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할까."
이상과는 달리 갈등이 가득한 현실을 잘 담은 문장이라고 생각해. 장애는 '개인의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적 문제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비장애인들의 모습이 모두 보였거든. 탈시설을 다루면서 시설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니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 같아. 혜영과 혜정의 앞으로의 일상이 궁금하고 기대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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