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서울을 꿈꾸는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역에서도 먹고살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거였어요. 가능하다면 도심지를 벗어난 농촌에서 말이죠. 하지만 막상 농촌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조금 막막하더라고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는 거라곤 농사밖에 없었거든요. 아니면 청년 창업을 하거나! 하지만 저는 창업도 농사도 아닌, 그저 자유롭게 창작 일을 하고 싶거든요. 그런 제가 지역에서 먹고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콘텐츠를 만들고 프리랜서에 가까운 제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돈을 안정적으로 벌며 살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지난 <서울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이어, 지역살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해요. 지난 10월, “아는 시골언니 만들기”라는 모토 하에 진행된 2023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직접 체험하고 왔는데요. 탈서울을 꿈꾸고 있다거나 지역살이에 관심이 있는 언니들에게, 시골언니 프로그램을 강력 추천하고 싶어 직접 후기를 남겨봅니다. :)
농사짓지 않아도 괜찮아!
시골언니 프로그램은 영주, 강릉, 제주, 옥천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데요. 어떤 지역에서는 농부와의 만남, 수확 체험 등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어떤 지역은 기획자, 활동가, 공예가,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시골살이에 관심이 있지만 귀농은 하고 싶지 않은데요. 처음 지인에게 시골언니를 소개받았을 때는 ‘귀농 안 할 건데… 신청해도 되나’하고 위축된 마음이 들었다가, “농사짓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떡하니 적혀 있는 걸 보고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제가 갔던 ‘청도’였는데요. 상세페이지를 보는데 ‘서점언니’, ‘농부언니’, ‘펜션언니’, ‘제로웨이스트 언니’, ‘라탄언니’라고 적혀 있는 게 꽤 흥미로웠어요. ‘청도에서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운영한다고?’, ‘지역에서 서점과 스테이, 식당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은 해봤지만 과연 가능할까? 싶었던 분야라 당사자의 이야기가 너무너무 궁금했죠.
“저는 솔직히 라탄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40대 이전까지는 계속 그림만 그렸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라탄을 접해서 40세에 자격증 따서 지금 여기까지 온 거예요. 쉽지는 않았지만 어찌저찌 먹고는 살아요. 이제 막 우물에 물이 고이는 정도. 아무튼 제가 말하고 싶은 건 20대, 30대에 내 남은 인생을 결정짓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저는 40대 중반인데 아직도 시도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라탄언니지만 언젠가는 다른 언니가 될지도 모르죠.” - <우아한 호작질> 라탄언니의 말
실제로 청도를 가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시골에도 다양한 일거리와 그 기회가 있다는 거예요. 특히 지역에서는 무엇이든 거의 ‘첫 번째’,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기 쉬워요. 또 서울에서 5년 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지역에서는 새롭고 참신하다고 여겨질 수 있고요. 스스로 무언가를 주도해서 기획하고 진행하길 좋아한다면, 어쩌면 서울보다 지역이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지역에는 지역사라든지, 그곳만의 고유한 정서나 문화가 존재하잖아요. 우리가 몰랐던,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일거리들이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요?
가령 제가 갔던 청도는 감의 도시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 감나무가 무성해요. 그래서인지 감식초, 감잎차, 감와인 등 감을 활용한 식료품이 많고요. 씨 없는 감인 ‘반시’는 청도의 명물로도 유명하답니다. 또 청도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해요.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정부 주도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청도가 큰 레퍼런스가 되었죠. 1950년대부터 수해 복구 작업 등, 주민들이 합심해서 마을을 가꾸는 모습을 당시 대통령이 보고 국가사업에 반영했다고 해요.
이처럼 각 지역에는 역사책에 없는 민중사들이 알아보면 꽤 많은데요. 이를 활용해서 색다른 문화/전시 프로그램을 열어보면 어떨까요? 로컬 비즈니스,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단어가 생겨나는 요즘, 지역 이야기를 활용한 로컬 콘텐츠가 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따라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콘텐츠잖아요. :)
아는 시골언니가 생겼다!
“00언니를 알게 되어 좋았어요. 시골 청도에 진짜 비빌언덕이 생겼음을 잊지 말고 언제든 놀러와요!”
제가 생각하는 시골언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강점이자 매력은 바로 ‘관계’인데요. 인천에서 태어나고 거의 평생을 인천에서 자라온 저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연고가 없었어요. 사실 이점 때문에 지역에서 사는 것이 고민이기도 했는데요.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사는 청년 여성이 과연 지역에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죠. 그러다 시골언니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정말 귀한 인연을 얻게 된 거예요. 청도에 사는 시골언니들은 물론, 대구와 부산, 성남, 세종 등 여러 지역에서 온 도시언니들도 알게 됐죠. 청도뿐만 아니라 대구와 부산에도 갈 이유가 생긴 거예요.
사실 이점은 저에게 있어서 가장 예상치 못했고, 그래서인지 가장 소중하다고도 여겨졌어요. 처음에 청도를 선택할 때는 단순히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선택했고, 사람보다는 청도의 자연을 기대하고 참여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마지막 날이 되니 자연은 둘째치고, 5박 6일간 함께 했던 언니들과 정이 쌓여서 작별이 무척 아쉬웠어요.
어쩌면 서로가 워낙 다른 직업과 관심사,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저는 일을 하면서 관계를 맺은 적이 많다 보니, 만났을 때 일 얘기를 하는 지인들이 꽤 많거든요. 그러다 낯선 청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니 이야기가 전혀 다른 쪽으로 새는 것도 재미있었고, 대화 카드를 통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어요. 또 15명이 넘는 도시언니와 시골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를 다시금 느끼면서 왜인지 모를 편안함도 느꼈어요. 남들과 달라도 되는구나, 어떻게든 살면 되는 거구나, 지역에서는 서로서로 돕고 연대하며 사는 구나, 하면서 용기와 지지를 얻었답니다. :)
농촌은 도시의 도피처가 아니다
“어디를 가든 똑같아요.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도시든 시골이든 힘들 수밖에 없어. 보통 시골에 낭만이 있잖아요. 영화나 예능에서도 그렇게 보여줄 때가 많고. 뭐랄까, 힐링 느낌? 근데 정말 아니거든요. 여기도 정말 치열해요. 서울만 아닐 뿐이지 여기도 바쁜 사람들 있고 그래요. 그래서 저는 무작정 시골이 좋다고 얘기하지 않아요. 서울이 너무 힘들어서 내려오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정말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죠.” - <지금 결실의 계절> 농부언니의 말
시골언니 프로그램은 지역살이에 있어서 중요한 태도를 일깨워 주기도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농촌은 도시의 도피처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 저는 예전부터 서울에서 사는 것이 버거웠고,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지역살이에 관심을 가졌는데요. 그런 점이 지역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어도, 그게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걸 느꼈어요.
사진 : 왼쪽 《캠핑클럽》 공식 포스터, JTBC / 오른쪽 《자연스럽게》 공식 포스터, MBN
‘지금 결실의 계절’이라는 농장을 운영하는 시골언니는 귀농하려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이점을 주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왜 이런 말도 있잖아요,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지만 알고 보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체에서 접하는 귀농인들 대부분은 성공한 사례고,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다시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국가에서도 지원사업을 하기는 하지만, 실패에 대한 전략이나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채로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도 많죠.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농촌 프로그램 대부분이 힐링, 치유 컨셉으로 표현되는 것도 영향이 있다고 봐요. ‘바퀴달린 집’이나 ‘여름방학’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죠.
“비건” 시골언니가 더 많아졌으면!
시골언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인 바람도 하나 생겼는데요. 청년 여성 중에는 환경을 비롯해 비거니즘에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저희 이엪지 뉴스레터만 해도 2,000명의 구독자 중 80~90%가 2030대 여성이죠. 하지만 시골언니 지역 중 대부분은 논비건 식사를 위주로 진행되고 있어요. 물론 지역 특성을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누군가에겐 참여할 수 없는 진입장벽이 되기도 해요.
저는 시골언니가 앞으로도 잘 될 거라 봐요. 청년 여성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언젠가 한국의 대표적인 청년 여성 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앞으로 시골 언니가 청년 여성들의 관심사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기를 바라요. 더 많은 비건옵션이 포함된 식사와, 비건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지역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언젠가는 저도 시골언니가 되어 도시에 사는 비건언니들을 위한 정성스러운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농촌에서 배운 비건적 태도
청도를 가기 전, 간단한 설문조사를 하나 했었어요. 시골이라는 단어를 보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택하는 건데요. 그중에서 저는 [낯선], [제한적인], [다양성이 낮은]에 체크했죠. 그런데 마지막 날, 똑같은 설문을 다시 하더군요. 놀랍게도 그때 제가 고른 단어는 [새로운], [친근한], [시도하는], [다양한] 등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단어가 많았어요.
이처럼 시골언니는 농촌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을 뒤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청도에서 5박 6일간 지내면서 제가 그동안 색안경을 끼고 농촌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농촌에서 산다고 해서 모두가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는 것. 시골이든 서울이든 어디에나 사람이 살고, 그곳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는 걸 깨달았죠. 언뜻 들으면 당연한데, 이상하게 청도를 가니 부끄러워지는 거 있죠?😅
검색창에 [비거니즘]을 검색했더니 나온 사진들 (캡처)
이는 사실 제가 비거니즘을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어요. 포털사이트에 비거니즘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초록색, 풀, (왜인지 모르겠지만) 힐링으로 연출된 이미지 등등… 먹는 것에서 나아가 삶 전반에서 비거니즘을 추구하는 저로서는 이런 이미지들이 오히려 비거니즘을 갇히게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에는 먹는 비건도 있고, 입는 비건도 있고, 사업하는 비건도 있고, 운동하는 비건도 있죠. 시작하는 이유도 저마다 다를 수 있고, 지속하는 방법과 그 속도도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다른 비건들처럼 소위 “비건적”이지 않다고 느낄 때, 가령 비건식에 실패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더라고요. 비거니즘에는 정답이 없는데 말이에요.
시골도 마찬가지예요. 채식만이 비거니즘인 게 아니듯, 지역살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삶이 아니죠. 이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이 도시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제겐 큰 힘이 되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저마다의 속도로 가되 힘들 땐 서로 어깨 기대면 되는 거라고요. 저마다의 비거니즘이 다양한 모양을 띠듯, 지역살이도 다양한 모양을 띠겠죠? 농촌도 도시에서 꿈꿨던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다양한 밥벌이와 관계를 꿈꿀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우리, 시골에서 만나자구요! 내년에는 어떤 지역을 가볼까요?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내년에도 진행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하니, 미리미리 어떤 지역을 갈지 알아보는 게 좋겠죠? 각 지역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농사펀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고, 시골언니들의 이야기는 탐방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탈서울을 꿈꾸는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역에서도 먹고살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거였어요. 가능하다면 도심지를 벗어난 농촌에서 말이죠. 하지만 막상 농촌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조금 막막하더라고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는 거라곤 농사밖에 없었거든요. 아니면 청년 창업을 하거나! 하지만 저는 창업도 농사도 아닌, 그저 자유롭게 창작 일을 하고 싶거든요. 그런 제가 지역에서 먹고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콘텐츠를 만들고 프리랜서에 가까운 제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돈을 안정적으로 벌며 살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지난 <서울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이어, 지역살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해요. 지난 10월, “아는 시골언니 만들기”라는 모토 하에 진행된 2023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직접 체험하고 왔는데요. 탈서울을 꿈꾸고 있다거나 지역살이에 관심이 있는 언니들에게, 시골언니 프로그램을 강력 추천하고 싶어 직접 후기를 남겨봅니다. :)
농사짓지 않아도 괜찮아!
시골언니 프로그램은 영주, 강릉, 제주, 옥천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데요. 어떤 지역에서는 농부와의 만남, 수확 체험 등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어떤 지역은 기획자, 활동가, 공예가,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시골살이에 관심이 있지만 귀농은 하고 싶지 않은데요. 처음 지인에게 시골언니를 소개받았을 때는 ‘귀농 안 할 건데… 신청해도 되나’하고 위축된 마음이 들었다가, “농사짓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떡하니 적혀 있는 걸 보고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제가 갔던 ‘청도’였는데요. 상세페이지를 보는데 ‘서점언니’, ‘농부언니’, ‘펜션언니’, ‘제로웨이스트 언니’, ‘라탄언니’라고 적혀 있는 게 꽤 흥미로웠어요. ‘청도에서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운영한다고?’, ‘지역에서 서점과 스테이, 식당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은 해봤지만 과연 가능할까? 싶었던 분야라 당사자의 이야기가 너무너무 궁금했죠.
실제로 청도를 가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시골에도 다양한 일거리와 그 기회가 있다는 거예요. 특히 지역에서는 무엇이든 거의 ‘첫 번째’,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기 쉬워요. 또 서울에서 5년 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지역에서는 새롭고 참신하다고 여겨질 수 있고요. 스스로 무언가를 주도해서 기획하고 진행하길 좋아한다면, 어쩌면 서울보다 지역이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지역에는 지역사라든지, 그곳만의 고유한 정서나 문화가 존재하잖아요. 우리가 몰랐던,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일거리들이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요?
가령 제가 갔던 청도는 감의 도시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 감나무가 무성해요. 그래서인지 감식초, 감잎차, 감와인 등 감을 활용한 식료품이 많고요. 씨 없는 감인 ‘반시’는 청도의 명물로도 유명하답니다. 또 청도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해요.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정부 주도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청도가 큰 레퍼런스가 되었죠. 1950년대부터 수해 복구 작업 등, 주민들이 합심해서 마을을 가꾸는 모습을 당시 대통령이 보고 국가사업에 반영했다고 해요.
이처럼 각 지역에는 역사책에 없는 민중사들이 알아보면 꽤 많은데요. 이를 활용해서 색다른 문화/전시 프로그램을 열어보면 어떨까요? 로컬 비즈니스,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단어가 생겨나는 요즘, 지역 이야기를 활용한 로컬 콘텐츠가 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따라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콘텐츠잖아요. :)
아는 시골언니가 생겼다!
제가 생각하는 시골언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강점이자 매력은 바로 ‘관계’인데요. 인천에서 태어나고 거의 평생을 인천에서 자라온 저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연고가 없었어요. 사실 이점 때문에 지역에서 사는 것이 고민이기도 했는데요.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사는 청년 여성이 과연 지역에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죠. 그러다 시골언니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정말 귀한 인연을 얻게 된 거예요. 청도에 사는 시골언니들은 물론, 대구와 부산, 성남, 세종 등 여러 지역에서 온 도시언니들도 알게 됐죠. 청도뿐만 아니라 대구와 부산에도 갈 이유가 생긴 거예요.
사실 이점은 저에게 있어서 가장 예상치 못했고, 그래서인지 가장 소중하다고도 여겨졌어요. 처음에 청도를 선택할 때는 단순히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선택했고, 사람보다는 청도의 자연을 기대하고 참여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마지막 날이 되니 자연은 둘째치고, 5박 6일간 함께 했던 언니들과 정이 쌓여서 작별이 무척 아쉬웠어요.
어쩌면 서로가 워낙 다른 직업과 관심사,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저는 일을 하면서 관계를 맺은 적이 많다 보니, 만났을 때 일 얘기를 하는 지인들이 꽤 많거든요. 그러다 낯선 청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니 이야기가 전혀 다른 쪽으로 새는 것도 재미있었고, 대화 카드를 통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어요. 또 15명이 넘는 도시언니와 시골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를 다시금 느끼면서 왜인지 모를 편안함도 느꼈어요. 남들과 달라도 되는구나, 어떻게든 살면 되는 거구나, 지역에서는 서로서로 돕고 연대하며 사는 구나, 하면서 용기와 지지를 얻었답니다. :)
농촌은 도시의 도피처가 아니다
시골언니 프로그램은 지역살이에 있어서 중요한 태도를 일깨워 주기도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농촌은 도시의 도피처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 저는 예전부터 서울에서 사는 것이 버거웠고,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지역살이에 관심을 가졌는데요. 그런 점이 지역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어도, 그게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걸 느꼈어요.
사진 : 왼쪽 《캠핑클럽》 공식 포스터, JTBC / 오른쪽 《자연스럽게》 공식 포스터, MBN
‘지금 결실의 계절’이라는 농장을 운영하는 시골언니는 귀농하려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이점을 주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왜 이런 말도 있잖아요,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지만 알고 보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체에서 접하는 귀농인들 대부분은 성공한 사례고,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다시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국가에서도 지원사업을 하기는 하지만, 실패에 대한 전략이나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채로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도 많죠.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농촌 프로그램 대부분이 힐링, 치유 컨셉으로 표현되는 것도 영향이 있다고 봐요. ‘바퀴달린 집’이나 ‘여름방학’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죠.
“비건” 시골언니가 더 많아졌으면!
시골언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인 바람도 하나 생겼는데요. 청년 여성 중에는 환경을 비롯해 비거니즘에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저희 이엪지 뉴스레터만 해도 2,000명의 구독자 중 80~90%가 2030대 여성이죠. 하지만 시골언니 지역 중 대부분은 논비건 식사를 위주로 진행되고 있어요. 물론 지역 특성을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누군가에겐 참여할 수 없는 진입장벽이 되기도 해요.
저는 시골언니가 앞으로도 잘 될 거라 봐요. 청년 여성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언젠가 한국의 대표적인 청년 여성 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앞으로 시골 언니가 청년 여성들의 관심사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기를 바라요. 더 많은 비건옵션이 포함된 식사와, 비건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지역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언젠가는 저도 시골언니가 되어 도시에 사는 비건언니들을 위한 정성스러운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농촌에서 배운 비건적 태도
청도를 가기 전, 간단한 설문조사를 하나 했었어요. 시골이라는 단어를 보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택하는 건데요. 그중에서 저는 [낯선], [제한적인], [다양성이 낮은]에 체크했죠. 그런데 마지막 날, 똑같은 설문을 다시 하더군요. 놀랍게도 그때 제가 고른 단어는 [새로운], [친근한], [시도하는], [다양한] 등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단어가 많았어요.
이처럼 시골언니는 농촌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을 뒤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청도에서 5박 6일간 지내면서 제가 그동안 색안경을 끼고 농촌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농촌에서 산다고 해서 모두가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는 것. 시골이든 서울이든 어디에나 사람이 살고, 그곳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는 걸 깨달았죠. 언뜻 들으면 당연한데, 이상하게 청도를 가니 부끄러워지는 거 있죠?😅
검색창에 [비거니즘]을 검색했더니 나온 사진들 (캡처)
이는 사실 제가 비거니즘을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어요. 포털사이트에 비거니즘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초록색, 풀, (왜인지 모르겠지만) 힐링으로 연출된 이미지 등등… 먹는 것에서 나아가 삶 전반에서 비거니즘을 추구하는 저로서는 이런 이미지들이 오히려 비거니즘을 갇히게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에는 먹는 비건도 있고, 입는 비건도 있고, 사업하는 비건도 있고, 운동하는 비건도 있죠. 시작하는 이유도 저마다 다를 수 있고, 지속하는 방법과 그 속도도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다른 비건들처럼 소위 “비건적”이지 않다고 느낄 때, 가령 비건식에 실패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더라고요. 비거니즘에는 정답이 없는데 말이에요.
시골도 마찬가지예요. 채식만이 비거니즘인 게 아니듯, 지역살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삶이 아니죠. 이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이 도시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제겐 큰 힘이 되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저마다의 속도로 가되 힘들 땐 서로 어깨 기대면 되는 거라고요. 저마다의 비거니즘이 다양한 모양을 띠듯, 지역살이도 다양한 모양을 띠겠죠? 농촌도 도시에서 꿈꿨던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다양한 밥벌이와 관계를 꿈꿀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우리, 시골에서 만나자구요! 내년에는 어떤 지역을 가볼까요?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내년에도 진행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하니, 미리미리 어떤 지역을 갈지 알아보는 게 좋겠죠? 각 지역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농사펀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고, 시골언니들의 이야기는 탐방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