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서울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올리브


저는 서울은 아니지만 수도권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평생을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보니, 제가 살아온 환경이 기본값인 줄 알았죠.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박탈감을 느껴왔습니다. 서울에 오고 가는 시간만 왕복 3시간, 많으면 4시간.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팟캐스트도 들어보고 영어 단어도 보려고 했지만, 체력이 줄어든 이후로는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불만은 있지만 소리 내어 불평한 적은 없었습니다. 다들 그러고 살지 않냐며 어느 정도 체념하고 살았죠. 


그러다 작년 즈음 사회학을 공부하면서(이엪지 덕분에!) 지역차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고, 그때부터 조금씩 지역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어요. 뉴스에서 다뤄지는 지역문제가 다소 납작하다고 느껴졌거든요. 가령 브랜디와 함께 재작년 봄에 다녀온 춘천 여행에서는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춘천을 가기 전에는 막연하게 비판적으로만 봤는데, 직접 가서 지역을 경험하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인프라가 발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산을 깎는다던지 서식지를 파괴하는 게 맞는 건지. 반대로 춘천은 서울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서 받는 수입이 만만치 않을 텐데, 무턱대고 개발을 막아도 되는 건지. 무엇보다 저는 지방에서 보내주는 에너지에 의존해 살고 있잖아요. 잠깐 있다 갈 사람이 수도권에선 누릴 거 다 누려놓고, 춘천시에 대고 환경을 파괴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조금 무책임한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에너지뿐만이 아니에요. 우리가 먹는 고기나 과일, 야채의 대부분이 지역에서 생산해 수도권에 갖다 바치는 수준이죠. 특히 육고기가 생산되는 방식, 즉 ‘공장식 축산’은 가히 충격적이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구석진 곳에 꼭꼭 숨겨둡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공간적으로 구분되어 이뤄지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비슷한 사레로 미국의 어린이들은 채소와 과일이 마트에서 자고 나라는 줄 안다고 합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농작물이 자라는 과정이 너무나도 쉽게 지워지기 마련이죠. 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무엇이든 인지하기 어렵죠. 


그밖에도 지역 차별은 정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교육의 불균형 문제, 기회의 불평등과도 연결되고 요즘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식량위기’와도 직결됩니다. 농업에 대한 일자리 수요 감소와 농경지 부족으로 국내 공급량은 점점 줄어드는데 필요한 먹거리는 오히려 늘고 있으니,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요. 국제 정세가 불안하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죠. 


(지역에 살면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시위, 행진에 선뜻 참여하기도 어려운...)


하지만 지금, 탈서울을 감행하는 건 여러모로 ‘손해’입니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이요. 질 좋은 교육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전부 서울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와 같은 프리랜서나 지식 노동자들은 네트워킹이나 다채로운 기회를 탐색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서울을 떠나기 어려워 합니다. 애초에 무형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죠. 무엇보다 공연, 콘서트, 국제도서전 등 각종 전시와 문화 행사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문화를 즐기고 트렌드를 소비할 권리와 기회 또한 서울에 몰려있습니다. 


더군다나 탈서울을 한다고 해서 마냥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에요. 어디든 결국 사람 사는 곳이기에 문제는 발생하고, 그로 인한 책임도 오롯이 내 몫이죠. 더군다나 서울을 떠나 지역으로 가는 이들 모두가 귀농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국가에서 지원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귀농과 연결되어 있죠. 당장 내 커리어를 제쳐두고 농사를 지을 수 있나 고민해 보면 그것도 아닌데.. 탈서울 지망생은 어디에나 있지만 선뜻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울이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정확히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죠). 



사실 저는 바로 그 지점을 간과했습니다. 어디든 서울만 벗어나면 행복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낭만이 있었거든요.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과 공사 소리로 시끄러운, 화려하지만 사무치게 고통스러운 이 대도시에서 벗어나면 한결 삶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착각 내지 바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탈서울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저한테도 어쩔 수 없는 ‘서울중심주의’가 찌들어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장 어디든 떠날 수 있다 한들 대형마트와 수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포기할 수 없었던 거죠. 게다가 저는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온 Z세대 아니겠어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불편함은 딱 그 정도였습니다. 너무 구석진 곳은 안 되고 인구는 8만에서 10만 명 정도. 서울이랑 KTX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면서 역과 가까운 오피스텔에 사는 것.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지역살이는 겨우 이 정도였던 거죠. 이대로라면 지역으로 가더라도 서울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할 게 분명했습니다.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와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그리고 ⟪어디에나 우리가⟫는 그런 의미에서 탈서울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고 고민하기에 좋은 책들입니다. 첫 번째 책을 읽으면서는 서울을 떠나 ‘양양’에서 어떻게 밥벌이를 준비하고 자리 잡아가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었고요. 두 번째 책은 내가 왜 탈서울을 하고 싶은지 ‘주거와 삶’에 대해서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찾는 답은 어쩌면 ‘어디’가 아닌 ‘어떻게’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죠.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나만의 안정된 보금자리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어디에나 우리가⟫는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아야 할, 살고 싶은 이유를 25명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줍니다. 어쨌거나 지역에서도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지역 불균형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니까요.


서울에 미련이 많은 것 같은 알량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탈서울을 꿈꾸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사는 건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당연함을 깨부수고 싶어요. 삶의 선택지가 훨씬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서요. “왜 굳이 서울을 떠나려고 해? 왜 굳이 취업을 안 해? 왜 굳이 고기를 안 먹어? 왜 굳이 논바이너리라고 말해?” ‘굳이’라는 단어가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는 날 선 질문들을 그만 듣고 싶습니다. 탈서울을 비롯해 지역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주고받다 보면, ‘왜 굳이?’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