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오늘만큼은 나도 비건 포토그래퍼?

올리브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 라이프 사의 모토 / 감독 벤 스틸러, 20세기 스튜디오 배급


저는 사진을 무척 좋아해요. 잡지사 <라이프>의 모토가 담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제 인생 영화고요. 라이프 아카이브나 코닥 등 사진과 관련된 브랜드의 굿즈에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죠. 그런 저의 사진 사랑에 다시금 불을 지핀 계기가 최근 있었는데요.


실은 지난 3월 8일에 KF 갤러리에서 <오늘부터의 세계> 전시를 초대해 주셔서 다녀왔어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주제로 한 사진 작품 전시인데, 거기서 체코 사진작가인 다비드톄신스키를 알게 됐죠. 우크라이나와 말레이시아, 독일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문제의식을 담은 사진들을 보는데, ‘나는 여전히 우물 안에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국제적인 문제들이 정말 많았죠.


“톄신스키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배제, 과잉 생산과 소비, 우리 내면에 감춰진 혐오와 차별, 불평등, 빈곤, 환경 파괴 등의 상황을 사진으로 증언함으로써 관람객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새롭게 마주할 내일을 그려보게 한다.” - 한국국제교류재단

고정관념에 맞서는 독립 작가, 다비드 톄신스키(David Tesinsky)

POWER TO THE PEOPLE ! (ENDE GELÄNDE 2019, GERMANY) ©️David Tesinsky


그중에서도 독일 뮌헨 인근에 있는 탄광촌에서 찍은 사진은 인상적이었어요. 어디론가 뛰어가는 토끼와 석탄을 캐고 있는 탄광촌, 그리고 저 너머로 작게 보이는 풍력발전기가 보이시나요? 재생에너지도, 석탄화력발전도 결국 토지를 개간해 야생동물의 터전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똑같다는 작가의 시선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오는 사진이었어요. 대부분의 큰 에너지 기업에서는 신재생 에너지와 석탄화력발전 모두를 겸하고 있으니까요.


POWER TO THE PEOPLE ! (ENDE GELÄNDE 2019, GERMANY) ©️David Tesinsky


시민단체 ‘엔데 겔렌데’의 활동가들과 경찰이 대치 중인 사진도 볼 수 있었는데요. 독일은 20~30대 환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시민불복종 운동이 활발한 국가 중 하나예요. 시민불복종이란 말 그대로 국가의 법이나 정부 내지 지배 권력의 명령 등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때,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말해요. 생태계와 지역사회를 해칠 만한 사업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한다는 거죠. 


흥미로운 점은 독일이 세계 최대 갈탄 생산국이라는 거예요. ‘더러운 석탄’으로 잘 알려진 갈탄은 화석연료 중에서도 저렴한 만큼 환경파괴가 심각하다고 해요. 기후행동에 진심인 시위대와 갈탄에 진심인 에너지 기업의 만남이라… 탈탄소에 있어서 선구자라고 생각했던 독일인데, 이번을 계기로 독일도 환경단체와 에너지 기업 간의 갈등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했어요. 


이처럼 <오늘부터의 세계> 사진전에서는 국제 이슈를 담은 사진을 여럿 볼 수 있었는데요. 자칫 불편하고 예민할 수 있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다비드 톄신스키의 작업물을 보면서, 저도 이런 멋진 작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카메라만 있으면 사진은 언제든 찍을 수 있는 거니까, 당장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나름의 시각을 담은 사진을 찍어보았답니다. 🙂 


내가 느낀 사회적 불편을 사진에 담을 수 있을까?


제가 찍은 첫 번째 사진은 배드민턴에 쓰이는 셔틀콕이에요. 배드민턴을 좋아해서 2년 넘게 쳐왔는데, 셔틀콕이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그나마 2021년부터 세계배드민턴연맹(BWF)에서 생물이 아니라 인조 깃털로 만든 셔틀콕을 공인 국제대회에 쓰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요.

 

하지만 여전히 국내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동물의 털로 만든 셔틀콕을 사용하는 게 현실이에요. 더군다나 셔틀콕 판매자가 동호회 회원인 경우가 많다 보니, 100% 플라스틱으로 만든 셔틀콕 판매자가 나타난다 해도 그들 간의 긴밀한 연결망 때문에 업체를 바꾸기도 쉽지 않죠.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배드민턴을 좋아하지만 배드민턴을 포기해야 하나 싶은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을 이 사진에 담고자 했어요.



두 번째로 찍은 사진은 인천 부평역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부평역은 유동 인구가 많고 특히 1호선 환승 구간에는 노인 분들이 많이 지나다니는데요. 사람이 한창 많이 다닐 정오쯤 에스컬레이터가 사진처럼 막혀 있었어요.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계단 이용이 불편한 이들을 고려해 근처 엘리베이터를 안내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찰칵! 찍어보았어요.😥 


심지어 근처에 엘리베이터가 없더라고요! 한숨을 푹푹 쉬며 힘겹게 발을 내딛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니 ‘아, 이거 진짜 문제다.’ 싶었어요. 알고 보니 부평역은 이미 2019년부터 ‘지옥역'이라 불리고 있었고, 2022년에도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턱 없이 부족하다고 해요. 서울 홍대입구역을 다니며 수많은 엘리베이터를 본 기억이 있어서일까요? 인천 주민으로서 아쉬움 가득한 마음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


비건을 검색했을 때, 더 다양한 사진이 나오면 좋겠어요.


이처럼 저는 사진전을 다녀온 이후 스스로를 사진 저널리스트라고 상상하며 종종 사진을 찍고 있는데요. ‘왜 나는 사진을 찍을까?’, ‘왜 나는 이런 사진들을 찍었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나는 이런 점이 불편했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거죠. 제가 다비드 톄신스키의 사진에 매력을 느낀 것도 바로 그 이유일 테고요.


문득, 이런 행동을 비거니즘에 투영해 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방안에는 대표적으로 채식이 있고, 실제로 구글에 비건을 검색하면 초록빛으로 가득한(?) 음식 사진들이 가득하잖아요. 저는 이점이 조금 아쉬웠어요. 채식이 아니더라도 비건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 떠올리는 생각들, 마주하는 상황들이 무척 다양하잖아요. 식생활에 국한되지 않는 비거니즘을 이야기하고 싶은 저로서는, 비건을 검색했을 때 더 다양한 사진들이 나왔으면 해요. 그러려면 우리가 더 많은 사진을 찍어야 하고, “내가 생각하는 비거니즘은 이런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열린 사회적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하겠죠.


그래서 저는 브랜디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 올리브 : 만약에 브랜디가 비거니즘을 주제로 사진을 찍는다면, 어떤 사진을 찍을 거 같아? 

🟠 브랜디 : 나는 새들이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찍을 거 같아. 새들이 날개짓하는 게 역동적이고 자유롭게 느껴지는데, 그게 비거니즘과 닮아 보였거든.


저는 브랜디의 대답을 들으면서 ‘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결국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건데, 찍는 사진은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같은 목표와 목적지를 바라보고 있어도, 그 과정이나 표현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다시금 느낀 순간이었어요.


비건을 지향하는 이들 중에는 환경문제를 이유로, 자신의 건강을 이유로, 혹은 동물착취에 반대해서 등등.. 저마다 다른 시작점을 갖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문제, 각기 다른 이유로 시작한 비건 지향인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가 아닐까 싶어요. 또 논비건에게 자칫 예민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도요. 


저는 사진을 활용하면 사람들이 비거니즘을 더 다양한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가령 동물권 퍼레이드에서 행진하는 사진을 본 사람은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를 깨닫는 거죠. 이런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관찰한다면 훨씬 재미있고 기발하고 엉뚱한 비건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몰라요. 조금은 예민할 수 있는 이야기를 느슨하게 만들 수도 있겠죠. 비거니즘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을 때, 가능한 많은 얼굴과 풍경들이 등장하면 좋겠습니다. 🙂


오늘만큼은 나도 ‘비건 포토그래퍼’라고 상상하며 사진을 찍어본다면 어떤 사진들이 나올까요? 비거니즘을 주제로 사진전을 연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진을 찍을 건가요? 내일 당장 사진을 찍는다면, 무엇에 렌즈를 갖다 댈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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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해하려는 대상이 복잡할수록 다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그래야 이 광선들이 수렴하여 우리가 많음을 통해 하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관점들을 합치고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이 실제로는 같은 것의 일부임을 이해하게 해준다."

- 벵하민 라바투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