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비거니즘을 소설로 풀어낸다면?

브랜디

안녕하세요, 브랜디입니다. 요즘 저는 책 읽는 데 재미가 붙었어요. 이렇게 각 잡고 책을 많이 읽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요. (당시 제 별명은 무려 책벌레...🤭) 이렇게 된 데는 소설을 읽는 맛(?)을 알아버렸다는 게 큰 것 같아요. 주로 정보 전달이 목적인 비문학 서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예측 불가능함’이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목적지도 모른 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요? 


그러던 중 정기 구독 중인 비거니즘 계간지 <물결 2022 가을호>를 배송받았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소설이 실려있었어요. 


『물결 2022 가을호』는 ‘비건이라는 상상력’을 특집으로 다룬다. 『물결』이 창간된 이래 최초로 시와 소설 등 문학 작품을 선보인다.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시인, 소설가, 뮤지션, 안무가가 저마다의 상상력을 보여 주었다. - 두루미 인스타그램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비거니즘’과, 요즘 최대 관심사인 ‘소설’의 만남이라…’


솔직히 저로서는 꽤 충격적인 기획이었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형태의 비거니즘을 봐왔지만 비거니즘을 소설로 풀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혹시 이런 작품이 또 있을까 싶어 검색을 해보니, 동물권을 소재로 한 여러 작가의 단편을 엮은 <무민은 채식주의자>라는 책이 이미 2018년에 나와있었더라고요. 흥미로운 마음으로 두 책을 함께 놓고 연달아 읽어 보았는데, 두 책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에 ‘비건적 태도’가 담긴 메시지가 있었어요.


(*이 글은 에디터 브랜디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상임을 밝힙니다.)




🤔 비인간존재는 모두 인간을 증오할까?


두 책에는 고릴라, 닭, 심지어 식탁까지, 화자를 비인간존재로 설정한 단편이 총 5편 정도 있는데요. (스포 가능성이 있어 작품 목록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설정한 의도는 유사해 보여요. 인간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끔 인간을 타자화한 거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5개 작품 모두에서 인간은 다른 존재를, 특히 비인간동물을 해쳐요. 재밌는 것은 소설 속 피해자들의 반응인데요. 누군가는 죽음을 운명이라 여기며 순응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가해자에게 반발심을 갖는, 좀 더 따뜻한 인간에게 애정을 느끼기도 해요.

이 책을 읽기 전에 ‘인간에 대한 비인간동물의 생각은 어떨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 저는 증오나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만 이야기했을 거 같아요. 하지만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도 그에 대한 반응이 저마다 다르듯, 비인간동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도 수많은 비인간동물을 너무 획일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 비인간존재의 고통은 인간의 고통으로 연결된다


<물결 2022 가을호>의 ‘나 혼자만 웃는 사람일 수는 없어서’(김연수)와, <무민은 채식주의자>의 ‘날아라 오딘’(구병모), ‘퐁당’(김서령), ‘검은 개의 희미함’(위수정), ‘겨울은 가고’(이주란)는 인간, 비인간동물, 식물 등 다양한 존재의 연결을 보여줘요. 그중 특히 마음이 갔던 작품은 위수정 작가의 ‘검은 개의 희미함’이었어요. 


나는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동물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사료와 물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속옷만 입고 청소를 시작했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청소기를 돌렸다. 배변 판을 락스로 닦았다. 하는 김에 욕조와 변기 청소까지 마친 후 마지막으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인간을 그렇게 소중히 여겨봐. 비난조로 내뱉던 R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머리에서 살아났다. - <무민은 채식주의자 - ‘검은 개의 희미함’(위수정)> p.99


동물보호협회에서 일하며 2명의 고양이와 1명의 강아지를 임시 보호하고 있는 화자가 강아지 한 명을 더 구조하는 내용인데, 그런 화자를 이해하지 못한 애인과는 결별했고, 본인도 이 일에 많이 지쳐있었어요. 극심한 피로감에 구조 요청 메시지가 울리는 핸드폰을 무음 모드로 바꿔두기도 하죠. 


저는 이걸 보고 ‘동물을 유기하는 것은 누군가의 돌봄 노동을 가중시키는 행위이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 최근 저희 동거견 중 한 명이 크게 아프면서 스스로 밥을 먹지 않아, 돌봄 노동시간이 증가한 엄마도 생각이 났죠. ‘살림’에는 반드시 ‘돌봄’이 필요해요. 돌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님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를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돌봄을 놓아버린다면 누군가를 살릴 기회도 줄어들 테고, 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그 역할이 가중되겠죠. 결국 악순환인 거예요.


🧡 지금 당신 곁의 반려동물은 행복한가요?



다른 동물은 더하겠지만, ‘상팔자’라고 불리는 반려동물도 사실은 일거수일투족을 사람에게 통제당해요. 제가 동거견들과 지내면서 가장 딜레마인 부분이기도 한데요. 언제 무엇을 먹을지, 언제 어디로 산책을 갈지,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요. 


흔한 수술인 ‘중성화 수술’도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약 10년 전, 동거견들이 어렸을 때 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시켰던 수술이죠.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건 꽤 최근의 일이에요. 누군가 저를 억지로 데려가서 ‘다 너 좋자고 하는 거야.’라며 제 성을 지워버린다면 너무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울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반려묘 ‘미래’를 수술시키지 않는 ‘인애’에게 눈길이 갔어요.


나는 인위적으로 어린 미래의 자궁을 적출하고, 본성을 억지로 막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 비록 어린 고양이지만 내가 그 생명의 본성을 꺾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가. - <무민은 채식주의자 - ‘미래의 일생’(권지예)> p.25


중성화 수술을 ‘학대’로만 바라보기엔 너무나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있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번거롭다’는 이유로 생후 3개월 남짓의 아이를 수술실에 들여놓죠. ‘이거 하면 아이도 훨씬 편해져요.’라는 의사의 말을 위안 삼아서 말이에요. (네, 제 얘기입니다..😔)


또 다른 방식의 통제는 다른 작품에서 엿볼 수 있어요. 김서령 작가의 ‘퐁당’과 박상영 작가의 ‘이상한 꿈을 꿨어’에서는 그저 귀여워서, 내가 우울해서, 비인간동물을 사들였다가, 결국 그들을 감당하지 못해 고의로 죽음에 빠뜨리는 장면이 나와요. 


저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집 안에서 수많은 비인간동물을 키웠어요. 열대어, 햄스터, 앵무새, 메추리, 사슴벌레, 그리고 지금도 동거 중인 강아지 두 명까지.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비인간동물을 사는 행위가 너무 쉬웠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하굣길에 학교 앞에서, 엄마와 함께 간 마트에서, 약간의 비용만 지급하면 큰 수고 없이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들이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밥 잘 주고 물 잘 주면 되는 줄 알았죠. 그렇게 저는 수많은 존재를 제 수명보다 빨리 떠나보냈지만 크게 슬퍼한 기억은 없어요. 특히 열대어는 어차피 누가 누구인지도 잘 구분이 안 가서, 죽어도 새로 사오면 그만이었습니다.


골목의 토끼들이 한꺼번에 다 죽어버렸을 때에도 꼬마들은 별로 울지 않았다. 다음날이면 우리 아버지가 토끼를 또 데려다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 <무민은 채식주의자 - ‘퐁당’(김서령)> p.51


많은 부모님이 아이들의 정서적인 안정과 책임감을 위해 반려동물을 집에 들이곤 해요. 하지만 정작 그런 부모님도 그 동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모르죠.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성인이 되고, 비거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가 돼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부모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당시의 저는 생명 경시의 태도를 가졌던 것도 같네요.  


🎤 더 많은 비인간존재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길



이 두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좋았던 건 아니에요. 내포된 의미를 파악하기 다소 어려웠던 작품도, 비인간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만 다루거나, 별다른 부정적 메시지 없이 펫샵에서 비인간동물을 사고파는 장면을 넣어 아쉬운 작품도 있었어요.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되어본 적 없는 존재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는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고 봐요. 비거니즘을 실천한지 4년 가까이 된 저에게도 몰랐던 정보와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준 작품들. 이 경험을 통해 ‘나의 앎에 자만하지 않고 계속해서 탐구하는 행위’ 또한 일종의 비건적 태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 아닌 존재와 함께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이 여행을 많은 분들이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